1713년(숙종 39) 작. 높이 1.44m, 입지름 1.13m. 종신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의하면, 순치15년(順治十五年, 1658) 무술 4월에 800근(斤)을 들여 주조하였다가 강희 52년(康熙五十二年, 1713)에 개주한 것이라 한다.
전체적으로 푸른 녹색이 감돌며 육중한 편인 이 종은 쌍룡(雙龍)의 종뉴(鐘鈕)가 있는 정부(頂部) 아래 종신이 연결된 형태로, 종신의 외형선은 견부(肩部)로부터 벌어지며 내려오다 구연부(口緣部)에 이르러 약간 오므라드는 선형(線形)을 취하고 있어 안정감과 육중함을 더하여 주고 있다.
종신의 구조는 종복(鐘腹)에 있는 띠장식대[太彫線帶]를 중심으로 상·하로 나누어졌는데 윗부분에는 견부에 붙어서 상대가 있고, 그 아래에는 4연곽(蓮廓)과 4보살상이 교대로 배치되었으며, 아랫부분에는 구연부에 붙어서 하대가 있고, 그 위에 한 줄의 띠장식과 명문이 둘러져 있어 비교적 공간의 짜임새가 있는 편이다.
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종뉴는 두 마리의 용이 조각되었는데 걸어놓는 기능만 있는듯 조각성(彫刻性)은 다소 결여되었다. 상대는 한 줄의 융기선으로 구획을 지어 그 안에 원문범자(圓文梵字)가 둘러져 있는 모양으로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과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시문한 것이다.
정사각형꼴의 연곽은 운당초문(雲唐草文)을 넣은 연곽대 속에 9개의 연화(蓮花) 모양의 종유(鐘乳)가 원문(圓文) 안에 돌출되어 있고, 이 연곽과 연곽 사이에 배치된 보살상은 양손을 합장한 채 연화를 밟고 서 있는 모습으로 얼굴이 원만하고 의습선은 비교적 유려한 편이다.
하대는 가는 줄기의 연화당초문이 섬세하게 돋을새김 주조되었으며, 종복에 둘러진 띠장식대는 한 줄의 태선(太線)을 중심으로 상·하에 가는 선이 한 줄씩 배치된 구성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양감이 풍부한 이 직지사종에서 보이는 것처럼 종유를 음통(音筒) 없이 쌍룡으로 조각한 점과 종신에 띠장식대를 두른 점 등은 중국종의 특색인데, 조선 초기 종들에 수용되었던 이 외래적 요소가 이 종에서는 토착화되어 한국종의 일면이 되어 버린 것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