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면적 1,309㎡.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벽돌집 건물로 1892년 9월에 준공되었다. 1886년(고종 23) 한불조약(韓佛條約) 이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서울의 천주교 신자수가 늘어나자 천주교에서는 1887년 서울의 문밖 수렛골[巡和洞]에 명동본당 산하의 공소(公所)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891년 명동성당의 주임인 두세(Camille Eugene Doucet, 1853~1917) 신부가 합동(蛤洞)에 성당 대지를 마련하였고, 부주교였던 코스트(E. J. G. Coste, 한국명 고의선(高宜善)) 신부의 설계와 감독 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집 근대식 건물인 약현성당을 1892년 9월에 준공하였다. 이보다 앞서 5월에 두세 신부가 약현성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어 부임함으로써 약현성당은 서울에서 두 번째 본당이 되어 서울 문밖과 경기도 일원을 관할하였다.
약현은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곳에 있는 고개 이름인데, 옛날에는 이곳에 약초를 재배하는 밭이 많았으므로 ‘약초밭이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약전현(藥田峴)’이라 불렀고, 이를 줄여 ‘약현’이라 하였는데, 점차 고개 부근의 지명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성당은 120평의 소규모 성당으로 길이 약 32m, 너비 12m에 종탑 높이 22m인데, 정면 중앙에 종탑을 두고 양측에 측랑(側廊)을 둔 라틴 십자형 삼랑식(三廊式) 평면구성이다. 측면 창은 처마 높이가 낮아 뾰족아치가 아닌 원형아치로 되어 있으나, 정면의 출입구와 측면 좌우에 돌출한 출입구 상부의 창살로 잘린 창의 반절에서 각기 뾰족아치를 이루어 고딕의 모양을 내고 있다.
종탑은 본채가 준공된 지 13년 뒤인 1905년에 세워졌고, 1921년에 내부 개조공사를 하여 남녀 간의 칸막이를 철거하고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대치하였다. 그 뒤 1974년 11월에 85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많이 훼손된 성당 건물의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76년 4월에 완성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교회 건축이라는 점과, 순수한 고딕양식은 아니지만 벽돌조의 고딕성당으로, 후세의 한국 교회건축의 모범이 된 점에서, 그리고 박해시대에 수많은 순교자를 낸 서소문 밖 광장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는 역사적 의미 등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