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수원부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헌(文獻)
  • 원덕(元德)
인물/전통 인물
  • 본관달성(達城)
  • 사망 연도1802년(순조 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38년(영조 1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종 (안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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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한성부판윤, 수원부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원덕(元德), 호는 영호(潁湖).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서종적(徐宗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승지 서명형(徐命珩)이고, 아버지는 교리 서효수(徐孝修)이며, 어머니는 이언신(李彦臣)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6년(영조 42) 생원으로 정시 문과에 장원하고, 이듬해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1772년에는 승지가 되었으며, 다음 해 대사헌을 지냈다. 1780년(정조 4) 전라도관찰사로 나가 그 지방의 군제(軍制)를 개편하여 국방강화에 노력하였으며, 1784년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군직(軍職) 개편을 통해 무인(武人)들의 사기 진작에 주력하였다.

1786년에는 좌참찬에 올랐으며, 2년 후에는 공시당상(貢市堂上)이 되어 국경지방의 무역을 관장하였다. 1788년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크게 공헌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사당을 새로 건축하게 하였고, 1790년에는 다시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유응부(兪應孚)의 묘비를 잘 관리하도록 경제적 뒷받침을 하였다.

1795년에는 판의금부사를 거쳐 한성부판윤·수원부유수를 지냈다. 1800년(순조 즉위년)에 이안묵(李安默)의 상소에 의해 경흥에 유배갔다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표면상으로는 서유린이 영·정조대의 의리를 위배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정치적으로 시파 세력에 대한 벽파 세력의 공격이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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