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서응진(徐應珍). 함경북도 길주 출신.
1937년 2월 항일민족통일전선 단체인 재만조선인조국광복회에 가입하여 장백현(長白縣) 왕가동(王哥洞) 지회를 결성하고 지회장이 되었다.
1937년 6월에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노덕전(蘆德田)에 당소조를 결성하였고, 같은 달 상강구(上崗區) 하방면(下方面)에 장백현공작위원회의 당지부를 조직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이 후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에 입대하여 정치공작원으로 대중공작을 벌이는 한편, 무장투쟁에도 참가하였다.
1937년 6월 보천보전투를 계기로 탐문수사에 들어간 일제 경찰에, 10월경 제1차로 조직이 탄로되었을 때 검거되었다. ‘혜산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1941년 8월 함흥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43년 12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