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국문필사본. 1828년 청나라가 서역(西域)의 회강(回疆)을 토벌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남연군 구(南延君球)를 진하사(進賀使)로 보낼 때 아직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선비인 작자가 백의(白衣)로 동행하여 연경을 구경하고 지은 연행계 기행가사이다.
분량은 2율각 1구로 헤아려 2,710구의 장편이다. 율조는 3·4조가 주조이고, 4·4조가 부주조로 분량에 비해 잘 다듬어져 있다. 작자는 여행 동기에 대해 “원유(遠遊)를 생각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의 저술 동기에 대해서는 “고생도 있거니와/구경이 많았으니/왕래에 지난일과/도처에 놀던 경과/인물과 풍속이며/듣는 일 보는 것을/날마다 기록하여/역력히 적었으니/우리 노친 심심중에/파적이나 하오실까”라고 밝혔다.
이 작품의 작자를 김지수로 추정하는 까닭은 작자와 동행한 성명 미상의 의관비장(醫官裨將)이 지은 한문 기행록 「부연일기(赴燕日記)」에 이 작품의 작자가 한 드문 행동을 언급하며 그 행위의 주인공이 김지수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1828년 4월 13일(음력) 서울을 떠나, 6월 9일에 연경의 객사에 도착하여 63일 동안 머무르며 중국의 수도 북경을 구경하고, 8월 13일에 다시 연경을 떠나 10월 3일 복명할 때까지 노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여러 가지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작자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압록강을 건너 처음 만난 호인(胡人)들의 생활상, 중국인들의 두발과 여성들의 전족(纏足), 기이한 장례풍속, 연경의 번화한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또한 구경거리로는 환술(幻術), 코끼리, 아라사인과 서학당(西學堂), 천자(天子)의 거동, 새들과 화초 등을 언급하고 있다.
한편 중국인의 요란한 음식상, 한인(漢人) 선비와의 교유, 유리창의 책방·문방구점·털옷 가게인 모물전·옷전·과물전·곡물전·철물전·목물전, 죄인들의 복색과 형벌 등을 재미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 표현과 다듬어진 시어(詩語)들은 “거록ᄒᆞ신 우리 노친(老親)/평안(平安)ᄒᆞ신 친필(親筆)이오/형뎨 ᄌᆞ녀(兄弟子女) 무ᄉᆞ(無事) 글시/마노라의 정찰(情札)이라/이제야 마음 노혀/얼시고가 졀뇨 난다”와 같이 평범한 생활언어와 신명나는 표현이 정겹다.
특히, 한인 선비를 만나 시문(詩文)을 지어 주고받기도 하고, 중국의 문물과 과거제도 등에 관해 환담하면서 주연을 즐기는 장면은, 해외여행이 자기 인식의 기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시대인 특유의 은의정신(恩義精神)이 숭명사대사상(崇明事大思想)으로 발전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