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벽암(蘗庵). 속성은 김해김씨(金海金氏). 아버지는 영윤(榮潤)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이다. 충청남도 덕산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15세까지 유학의 경서를 섭렵하고 16세에 남양주시 수락산 흥국사(興國寺)에서 선사 연월(蓮月)을 은사로 득도하여 먼저 교학을 이수한 뒤 선(禪) 공부를 하였다. 26세에 탄영(坦泳)에게 입실하여 그의 법을 이은 뒤 강주(講主)로서 흥국사에서 개강하였다.
35세에 『화엄경』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의 “모든 불보살이 법을 중히 여기어 신명을 아끼지 않고 피를 내어 경을 쓴다.”는 구절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손가락을 따서 피를 내어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족자에 썼다.
한 자를 쓸 때마다 세 번 돌고 세 번 예배하고 세 번 극락정토를 부르면서 백일 만에 한 권을 이루었고, 그것을 판각하여 1,000여 부를 발행하였다.
38세에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에 들어가서 백일기도를 올린 뒤 수마노석탑(水瑪瑙石塔)을 중수하였다. 이 탑은 신라의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의 청량산에 있는 문수대성전(文殊大聖殿)에 기도하여 석가세존의 사리를 얻어와서 수마노석으로 세운 사리탑인데, 탑을 중수하려고 그 기저를 파니 기단 밑 돌에 ‘蘗庵重修(벽암중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57세에 금강산유점사(楡岾寺)에 들어가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의 화주(化主)가 되어 연종(蓮宗: 염불회)을 증흥시켰다.
서울의 유력한 고관들을 신도로 삼아 유점사를 크게 중수하였다. 그 뒤 유점사에서 서방을 향하여 합장하고 염불하면서 입적하였다. 나이 75세, 법랍(法臘) 55세였다. 제자로 정의(淨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