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순천 출생. 성은 임(林)씨. 아버지는 원오(元悟)이고 어머니는 김(金)씨이다.
11세 때 송광면 장안리의 용호재(龍虎齋)에 나아가 김찬국(金贊國)에게서 사서(四書) 등을 공부하였다. 12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1905년 송광사(松廣寺) 천자암(天子庵)에서 취월 기순(翠月琪珣)을 은사로 출가하였으며, 호붕 진홍(浩鵬振弘)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호붕의 문하에서 사미과를 수료하고, 1907년 금명 보정(錦溟寶鼎)에게 사집과와 초등과를 수학하였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송광사의 보통학교를 이수하고, 그 해 4월 금명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1913년 호붕의 밑에서 중등과정을 수료하였으며, 1915년 서울 중앙학림 중학과정을 졸업하였고, 계속해서 1919년불교중앙학림을 졸업하였다.
이 해 송광사 지방학림의 교원 및 학감에 1920년 송광사에서 시행한 법계고시에 응시하여 대덕(大德) 법계를 받았다. 기산(綺山)이라는 그의 법호는 이 때 지어진 것인데, 법맥상 제운 해징(霽雲海澄)의 6세손에 해당한다.
1923년에는 송광사 주지대리를 맡기도 했으며, 1927년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감로탑을 개축하고 비석을 세우는 일과 사고(史庫)를 정리하는 일에 앞장섰다. 1929년부터 송광사 전문강원의 강사가 되어 후학지도에 전념하였으며, 1932년에는 송광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이후 그는 종단의 주요 보직을 역임하는데, 전라남도교구 종무원장(1949), 중앙총무원 이사(1950), 중앙총무원 원장(1954) 등을 지냈다. 1962년에는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의 초대 총무원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총무원장직을 사임하고 동국대학교에서 강단에 서기도 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청룡암에서 세속 나이 77세, 법랍 64년으로 입적하였으며, 송광사 부도전에 그의 부도탑이 봉안되어 있다. 『송광사지』·『전남도지』·『금강반야바라밀경강의』·『불교법어성전』 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송광사의 역사를 정리한 업적은 크게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