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선암사 대웅전은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중창된 사찰 건물, 불전이다. 백제 때에는 비로암으로 불렸는데 통일신라 875년에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고쳐 불렀다. 지금 남아 있는 대웅전은 1824년에 중창된 것이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는 민흘림기둥이 있으며 기둥머리에는 화려하게 용머리 장식을 하였다. 대웅전의 화려한 장식 기법은 계보를 이루어 부안의 내소사 대웅보전 및 개암사 대웅전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창된 사찰건물. 불전.
개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그러나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들이 정유재란(1597) 때 불에 타 없어져 1660년(현종 1)에 경잠 · 경준 · 문정 등 3대사가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현존 대웅전은 상량문이 발견되어 1766년(영조 42)에 불탄 것을 1824년(순조 24)에 중창되었음이 밝혀졌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내용
높이 1m로 쌓은 기단 위에 주춧돌을 배열하였는데, 앞면에는 3단으로 굄을 둔 둥근 주춧돌을, 뒷면 · 옆면에는 덤벙주춧돌을 놓았다.
문은 모두 빗살을 둔 4분합문(四分閤門)이며 위에 교창(交窓)을 두지 않았다.
내부는 천장을 정(井)자 모양의 반자로 막은, 이른바 우물천장으로 하였고, 고주(高柱) 2개를 세워 그 앞에 불단(佛壇)을 마련하는 한편, 후불벽(後佛璧)을 세워 후불탱화(後佛幀畵)를 걸고 앞에 본존불을 안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출목수가 많아서 처마 끝이 심하게 휘어 올라갔으나 날렵하기보다는 장중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선암사(仙巖寺)의 건축(建築)』(장모창 편, 선암사성보박물관, 2007)
- 『선암사(仙巖寺); 대웅전(大雄殿)·판전(板殿)·범종루(梵鍾樓) ·시굴조사 및 복원 기본계획』(전남대학교박물관·순천시 편, 전남대학교박물관, 2005)
- 『선암사(仙巖寺) 대웅전(大雄殿):실측조사(實測調査) 및 수리공사(修理工事) 보고서(報告書)』(문화재청·순천시, 2002)
- 『선암사』(이계표·천득염·최인선 공저, 이돈기·최인선 [공]사진, 대원사, 2000)
- 「조계산(曺溪山) 선암사(仙巖寺) 대웅전(大雄殿) 실측조사보고(實測調査報告)」(이봉수, 『불교문화연구』제10집, 2003)
- 「순천 선암사의 공간미학」(김홍식, 『문화재』28, 199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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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창문 위에 두는 낮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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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악마를 항복하게 하는 인상(印相).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인상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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