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개성성균관 자리에는 고려문종의 별궁이 있었는데 순천관(順天館 : 외국사신들이 들르던 숙소)·숭문관(崇文館 : 교육기관)으로 변천되어 오다가 1089년(선종 6)국자감(國子監 : 최고 유교 교육기관)을 이곳에 옮겨왔으며, 1310년(충선왕 2)성균관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1602년(선조 35)∼1610년(광해군 2) 사이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 가운데 대성전(大成殿)과 서쪽의 재(齋)는 1602년에 짓고, 명륜당(明倫堂)과 동무(東廡)·서무(西廡)는 1605년(선조 38)에 다시 지었다.
개성성균관은 약 1만㎡의 넓은 장방형 부지에 200여 칸의 건물이 들어앉아 있으며, 둘레에는 돌아가면서 담장을 둘렀다. 성균관은 크게 대성전구획과 명륜당구획으로 나뉘는데, 내삼문(內三門)이 있는 담장으로 그것을 구분하였다.
명륜당구획은 외삼문(外三門)이 있고, 앞뜰 좌우에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안쪽 정면에 명륜당이 있다. 또 명륜당 동쪽에 향실(香室), 서쪽에 존경각(尊經閣)이 만들어져 있는데 다른 향교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대성전구획은 명륜당 다음에 있는데, 입구에는 내삼문이 있고, 거기서 좀 들어가면 각각 14칸의 동무와 서무가 있으며, 맨 뒤 가운데에 중심건물인 대성전이 있다. 이 두 구획의 서쪽에 계성사(啓聖祠)와 10여채의 부속건물들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이다.
성균관은 엄격한 유교적 질서에 맞게 남북축을 따라 중심 부분을 대칭으로 구성하였으며 장식은 많이 하지 않았다. 또한 서울성균관은 앞부분에 대성전구획이 있고 뒤에 명륜당구획이 있으나, 개성성균관은 이와는 달리 앞부분에 명륜당구획이 있고 뒷부분에 대성전구획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