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눌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환성 지안(喚醒志安)의 시문을 모아 『환성시집』을 편찬한 승려.
이칭
  • 부암(斧巖), 화월(華月)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762년(영조 38)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89년(숙종 15)
  • 출생지평강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익 (전 동국대학교, 불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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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환성 지안(喚醒志安)의 시문을 모아 『환성시집』을 편찬한 승려.

내용

선승(禪僧). 전주이씨(全州李氏). 호는 화월(華月) 또는 부암(斧巖). 평강 출신. 14세에 평강 운마산 보월사(寶月寺)로 출가하여 옥심(玉心)의 제자가 되었다. 그 뒤 탄규(坦圭)에게 나아가서 도를 닦았으며, 송우(松藕)와 남악(南岳)의 지도를 받기도 하였다.

뒤에 환성(喚醒)의 밑에서 경학(經學)에 몰두하였는데, 환성이 대화를 나누어보고 크게 기특하게 여겨서 방장실(方丈室)에서 심인(心印)을 전하였다. 환성이 김제 금산사에서 화엄대회(華嚴大會)를 베풀 때에는 1,400여 명이 모여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그때 환성을 대신하여 법좌(法座)에 올라 강설하였으며, 언변이 걸림이 없이 자재하여 청중을 교화하였다.

이때 환성은 도를 증명하는 게(偈)를 주었다. 뒤에 금강산과 보개산(寶蓋山)·운마산·오성산(五聖山) 등의 여러 절에서 강당(講堂)을 열어 30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보월사로 돌아가서 제자들을 해산시키고 60세의 나이로 정혜(定慧)를 닦기에 전념하였다.

그 뒤 14년 동안 참선을 닦다가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입적이 가까웠음을 알렸다. 이에 제자들이 임종게(臨終偈)를 청하자 몇 번 사양하다가 글로 남기고 입적하였다. 나이 73세, 법랍 66세였다. 제자로는 탄경(坦慶) 등이 있다. 대제학 서명응(徐命膺)이 비명을 찬하여 보월사에 세웠다.

참고문헌

  •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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