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급 법정감염병의 하나이다. 감염원은 사람이며, 환자나 보균자의 코나 콧물, 상처 등을 통해서 전파되거나 이것들로 오염된 물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전파되나 근래 항생제의 도입과 생활 정도의 향상에 따라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당독역(唐毒疫)이라 불린 역질(疫疾)이 바로 성홍열이라고 생각되며, 당홍역(唐紅疫)이라고도 불린 바 있다. 이와 같은 당독역 내지 당홍역의 유행은 ≪광해군일기≫와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 芝峰類說≫에도 잘 나타난다.
1613년(광해군 5)부터 1614년 사이에 발생된 당독역의 유행으로 내의원에서 ≪벽역신방 辟疫神方≫을 만들었으며, ≪지봉유설≫에는 옥온(獄瘟)·당홍역이라는 병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과거의 각종 방서(方書)에는 당독역이라는 병명이 없고 당독역을 치료하는 방법도 없어서 매우 무서운 역질로 생각하였으며, 1613년 봄부터 여름에 크게 유행하였을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1613년은 화운(火運)에 속하기 때문에 그 병독(病毒)이 혹독하고 다른 역질과 달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여 당독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때 당(唐)이란 악성말라리아 같은 당학(唐瘧)이나, 매독 같은 당창(唐瘡)이라는 뜻에서 당이라는 말을 써서 이 역질이 무서운 악병임을 지칭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당독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행이 거듭됨에 따라 면역력이 획득되고 1931∼1932년경에 크게 유행했으나 광복 이후 중증 성홍열 환자는 줄어들어 점차 그 위험도가 떨어지고 있다.
단지 비정형적(非定型的)인 경미한 성홍열 환자가 산견(散見)될 뿐 중증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거의 없어지고 이제는 1종전염병에서 2종전염병으로 바뀌었으며, 이와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리라 짐작된다.
유행 시기를 보면 대개 11월부터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이듬해 6월에 절정을 보이고 8∼10월 사이에 환자 수는 적어진다. ≪벽역신방≫에서도 연운(年運)이나 기상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1940년대까지는 치명률(致命率)이 높아서 20∼30%에 이르렀으나 이제는 이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벽역신방≫에 나타난 당독역의 증상을 보면 머리가 아픈 두통과 온몸이 아픈 신통(身痛), 오한·장열(壯熱:고열이 지속됨)과 함께 머리와 얼굴, 그리고 온몸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동통(疼痛)이 심해지며, 정신이 혼미해지고 헛소리를 하며 목이 붓고 아프며 막히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형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는 많지 않다. 페니실린과 설파제가 특효를 나타내며 회복기 환자의 혈청이나 항독소(抗毒素)를 중증 환자에게 사용해도 효과가 있고, 면역력이 증가됨에 따라 발생도 줄어들고 전형적인 환자도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홍역과 함께 급격하게 줄어드는 소아전염병(小兒傳染病)의 하나로 이 병을 지적할 수 있으며, 특별한 환경의 변화가 없는 한 더욱 줄어들게 되리라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