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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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활
개념
의복의 팔을 싸는 부분의 의류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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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의복의 팔을 싸는 부분의 의류명칭.
내용

좌우로 몸판에 연결되어 양팔을 덮게 되어 있다. 소매는 어깨로부터 팔에 걸친 연결부분에 속하므로 팔을 보호하고 방한(防寒)·방서(防暑)·방상(防傷) 등의 목적으로 어깨와 양팔을 덮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러한 실용성에다 장식성을 가미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옷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저고리나 두루마기에도 소매가 달려 있어 옛날에는 실용성 위주의 직배래이었다. 조선시대에 내려와서는 곡선을 이루기 시작하고 말기부터는 심한 곡선을 보여주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관복은 두리소매 또는 콩태소매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여자 예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그 너비는 시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였으나 남녀 모두 보통 80∼90㎝에 이르렀는데 말기의 의제개혁(衣制改革) 때에는 약 50㎝ 정도로 작아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두리소매는 없어졌으나 지금에 와서는 구식 혼례에 신랑이 이를 입어오고 있다. 일반적인 우리 옷의 소매치수를 보면, 사람의 체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화장의 경우, 16세기에는 손을 덮을 정도로 길어 70∼80㎝나 되었다.

17세기로 접어들면서는 다소 짧아지는 경향이 있어 65∼75㎝ 정도로 손목끝까지의 화장길이가 되었다. 그 뒤 18세기에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는데 19세기 중엽부터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그 활동성을 고려하여 짤막한 소매기장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소매부리는 조선 초기에는 20㎝ 내외이던 것이 중기에는 20㎝에 못 미치게 되었다.

이것은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면서 소매부리도 좁아지는 것을 뜻하는데, 말엽에 이르러 저고리 길이가 더욱 짧아지면서부터는 소매부리는 불과 12∼15㎝ 정도밖에 안 되었다. 최근에는 14㎝가 기준이 되어 있다. 진동치수도 조선 초기에는 30㎝가 넉넉하던 것이 차차 줄어들면서 20㎝도 안 되었는데 이것도 저고리 길이가 짧아진 것이 원인이며, 현재는 22∼23㎝가 기준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한국복식사연구』(류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한국전통복식사연구』(고복남, 일조각, 1986)
집필자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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