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목의 제도는 중국 상고 시대부터 유래된 것인데 주대(周代)에 들어와 주공(周公)이 예(禮)와 악(樂)을 정비하면서 비로소 구체화되었다.
『주례』에 의하면 제1세를 중앙에 모시는데 천자는 소에 2·4·6세, 목에 3·5·7세를 각각 봉안하여 삼소삼목(三昭三穆)의 칠묘(七廟)가 되고, 제후는 소에 2·4세, 목에 3·5세를 각각 봉안하여 이소이목(二昭二穆)의 오묘(五廟)가 되며, 대부(大夫)는 일소일목의 삼묘(三廟)가 된다.
문헌에 의하면 원래 소는 ‘존경한다’ 또는 ‘밝다’는 뜻으로 북쪽에서 남쪽을 향한 위치를 일컫고, 목은 ‘순종한다’ 또는 ‘어둡다’는 뜻으로 남쪽에서 북쪽을 향한 위치를 일컫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묘차(廟次)는 변해도 소목의 차서(次序)는 바뀔 수 없다고 하였다. 원래 주나라 소목의 제도는 천자국(天子國)만이 칠묘를 두게 되어 있었으나, 그 뒤 중국의 역대 왕조가 거의 모두 칠묘를 두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이 제도가 시행될 때는 5대가 넘으면 위패를 거두어 태조실에 두었다가 5년이 지난 뒤 은제(殷祭 : 성대한 제사)를 지내고 매주(埋主)하였는데 뒤에 이 제도가 흐지부지되어 종묘에서는 역대 왕의 신주를 그대로 봉안하였다.
현재 종묘의 정전에는 태조로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49위의 신주가 19실(室)에 봉안되어 있고, 별묘인 영녕전(永寧殿)에는 추존 4대 왕 및 왕비를 비롯, 세실(世室)로 정하지 못한 33위의 신주가 16실에 봉안되어 있다.
한편 일반 사대부의 가정에서는 주자의 『가례』에 따라 사당에 4대의 신주만을 봉안하고 그 윗대의 조상의 신주는 매안(埋安 : 신주를 무덤 앞에 묻음)하는 풍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