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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외사 / 오경원
소화외사 / 오경원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문신 · 학자 오경원이 고려 말부터 1824년까지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 관하여 기록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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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 학자 오경원이 고려 말부터 1824년까지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 관하여 기록한 역사서.
서지적 사항

12권 6책. 목판본. 특히 명나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서류(史書類)·총집류·문집 등에서 기사를 뽑아 엮은 편년체의 사서이다.

1830년에 본편 8권의 초고를 완성한 뒤 아들 현상(顯相)이 이것을 교열하고 별편(別編) 2권, 속편(續編) 2권을 보충해 간행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아들 취선(取善)이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다시 출판하였다.

내용

권두에는 오희상(吳熙常)·김병학(金炳學)·윤정현(尹定鉉)·김학성(金學成)의 서와 본편의 편찬 취지를 밝힌 범례 14칙, 총요통론(總要通論) 등이 실려 있다.

이것들은 이 책 전체의 집필 요령과 취지를 밝힌 것으로 존주양이(尊周壤夷)의 중세문화를 옹호하면서, 우리 나라와 중국 관계를 소중화(小中華)와 중화(中華)라는 보편주의적 문명관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한왕조(漢王朝)의 연호와 태세간지(太歲干支)에다 조선조 조종(朝宗) 몇 년을 연결시켜 연도 표시를 통일시켰다.

권두 다음에 본집과 발문, 속편과 발문, 별편과 발문이 이어지는데 각 책에 2권씩 수록되어 있다. 본집의 기사 수록 시기는 1392년(태조 1)부터 1824년(순조 24)까지이다. 사신들의 명단과 특사의 파견 등 모든 대명(對明) 외교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선조와 인조 연간의 왜란과 호란에 주력해 이 시기의 외교 전란 기사가 5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 보아 이 책이 우리 나라를 중심으로 한 중국·일본의 동아시아 세력판도가 극심한 변화를 초래하고, 그에 따라 중세문명관의 혼란이 야기되던 시대의 산물임을 반증한다.

그러나 조선과 명의 교섭이 정상적이었던 때의 기사는 그들의 외교가 같은 문화권내에서의 공동 이익을 위한 문물 교류였거나 수호 행위임을 나타내고 있다.

속편에는 선조의 명으로 신흠(申欽)이 편찬한 『임인성명기(壬人姓名記)』를 실어 왜란 때 원정 온 지휘관의 명단을 적고 간단하게 설명하였다. 또한 「정왜후잉거동국제인(征倭後仍居東國諸人)」·「피지동래제인(避地東來諸人)」·「동래황조여인(東來皇朝女人)」 등을 『황조유민록(皇朝遺民錄)』에서 발췌, 기록하였다.

별편은 『대보단지(大報壇志)』 상·하이다. 숙종이 명나라의 패망 1주갑(周甲)을 맞으며 후원(後苑)에 대보단을 만들고 명황실(明皇室)에 제례를 드린 뒤로 그와 관련된 각종 의례와 절차를 정리한 것이다.

사대(事大)의 뜻을 밝히기 위해 편집되었다고 하나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의 동아시아 정세 및 외교 관계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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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장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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