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고종 16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73㎝, 가로 155.8㎝. 이 불화는 19세기 말의 형식화되고 도식화된 불화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도명존자(道明尊者)·무독귀왕(無毒鬼王)을 비롯한 시왕(十王)·판관(判官)·우두(牛頭)·마두(馬頭) 등 여러 권속들이 중앙의 지장보살을 둘러싸고 있다.
인물 형태는 신체에 비하여 얼굴이 커서 불균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얼굴 표정도 원만 자비한 불·보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위엄이 없고 희화적인 속인의 얼굴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비종교적인 묘사는 꾸부정하게 등을 굽히고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사자(死者)의 명부(名簿)를 들여다보고 있는 판관의 모습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장보살 왼쪽의 염라대왕의 모습도 다른 그림에서와 같이 면류관을 쓴 대왕의 모습이 아닌 산신도(山神圖)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종래 종교적인 경외감을 주던 불화의 성격과는 달리 민중들에게 좀더 친근한 불화로서의 일면을 보이고 있다.
필선과 색채 또한 이 불화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비수(肥瘦) 없이 일률적인 필선은 특히 옷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중 앞줄에 그려진 도명존자·무독귀왕을 비롯한 6명의 시왕의 옷주름 선은 전통적인 화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도식화된 일률적인 주름과 규칙적인 Ω자형 주름이 무질서하고 모호하게 표현되었다. 즉, 기법의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색상은 붉은색이 주가 되었다. 그리고 황색·녹색·청색·백색 등이 함께 사용되었다. 앞 시대의 맑고 밝은 색상에 비하여 탁하고 짙은 원색 계통이 많이 사용되어 탁한 느낌을 준다. 특히 19세기 불화의 특징적인 색채인 청색의 사용으로 인하여 고상한 품위를 다소 떨어뜨리는 감이 있다.
이 불화는 1879년 부사 엄시영(嚴時榮) 등 여러 사람의 시주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그리고 편수(片手)인 천희(天禧)·기연(琪演)·일준(一俊)·영수(玲受) 등이 그 제작에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