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권 4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집 경위·필사 연대는 미상이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1책에 제문 13편, 조문(弔文) 1편, 축문 7편, 상량문 1편, 서(序) 4편, 기(記) 5편, 발(跋) 2편, 설(說) 5편, 명(銘) 3편, 화제(畵題) 8편, 논(論) 1편, 2·3책에 시 99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4책은 송서공 사실로서 행장·묘갈문·묘지문 각 1편, 제문 10편, 만장 43편, 통장(通章) 10도(度), 유장(儒狀) 9편, 민장(民狀) 2편, 상언(上言) 1편, 읍보(邑報) 1편, 도계(道啓) 1편, 복계(覆啓) 2편, 예관(禮關) 2편, 상량문 1편, 기문(記文) 2편, 쌍효자각비문(雙孝子閣碑文) 2편, 읍지(邑志) 2편, 오륜백영초(五倫百詠招) 1편, 정려예성운(旌閭禮成韻) 67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 중 「제백씨문(祭伯氏文)」은 형 최성철의 2주기(週忌)에 쓴 것으로, 형의 평소의 행적을 회고하고 자신의 애절한 마음을 피력한 장편의 글이다. 「조석류문(弔石榴文)」은 정원의 석류가 말라 죽은 것을 애도하여 지은 글이다. 「송서설(松棲說)」은 산수에 묻혀 살기 때문에 자신의 호를 송서라 하였다는 호설이다. 「성전자여초설명(性全字如初說銘)」은 자신의 자설로 명을 삼은 특이한 형식으로, “성이란 하늘의 명이요, 마음의 이치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자인 성(性)의 자의를 풀이하고 이것을 온전히 하고자 한 것이다.
시는 대체로 오언보다는 칠언이, 절구보다는 율시가 압도적으로 많다. 작자가 이름난 효자였던 만큼 「선비기신좌재(先妣忌辰坐齋)」·「도망자(悼亡子)」·「백씨기신좌재(伯氏忌辰坐齋)」 등과 같이 족친에의 정을 나타내고 인륜의 차서를 밝히며 자식된 도리를 읊은 시가 있다. 또한 「봉선화(鳳仙花)」·「영문자(詠蚊子)」·「오(烏)」·「서과(西瓜)」·「실솔(蟋蟀)」 등 영물시로서 사물을 보고 즉흥적인 감흥을 읊은 것도 있다. 따라서 시는 효행을 실천하는 생활 속에 접하는 순수한 서정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독서유기(讀西遊記)」 등 독서 생활의 일면을 보여주는 시도 있다.
4책의 유사에는 그의 효행을 기록한 생애적 자료를 포함하여 효행을 기리기 위한 후대인의 활동상을 담았다. 10여 건의 통장은 죽림서원(竹林書院)을 비롯하여 나주향교·광주향교·남원향교 등 전라도 일대의 향교에서 상부 관청에 최성전의 효행을 알리고 정려를 내려주기를 청하는 글이다. 유장·민장·읍보 등은 도내 유생이나 주민이 본부·감영·예조에 올린 것 등 정려를 받기까지의 과정에서 작성되었던 여러 가지 사안을 모아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