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원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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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정조 10) 천수경(千壽慶)이 중심이 된 문인들의 모임.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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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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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786년(정조 10) 천수경(千壽慶)이 중심이 된 문인들의 모임.
내용

서울의 중인계층들이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玉流洞)의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단체로 일명 ‘옥계시사(玉溪詩社)’라고도 한다.

사대부문학이 중심을 이루던 조선 사회에 중인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위항문학(委巷文學, 또는 閭巷文學)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숙종조 무렵이다. 그 뒤에 계속적인 발전과정을 거쳐서 위항인들의 문학활동 및 그들 활동의 집결체 구실을 한 것이 바로 송석원시사이다.

송석원시사 주요인물은 맹주인 천수경을 비롯하여 장혼(張混) · 김낙서(金洛書) · 왕태(王太) · 조수삼(趙秀三) · 차좌일(車佐一) · 박윤묵(朴允默) 등이 있다.

그들은 매일같이 천수경의 거처인 송석원에 모여 시문으로 즐겼다. 사대부계층에 비하여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자신들의 신분적 ·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자포자기적 심사를 읊은 시를 많이 남기고 있다.

송석원시사의 활동 중에서 백전(白戰)은 전국적 규모의 시회이다. 1년에 두 차례씩 개최되었다. 남북 두 패로 나누어 서로 다른 운자(韻字)를 사용함으로써 공정을 기하였던 큰 모임이었다.

송석원시사는 사대부에 비하여 신분이나 경제력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던 위항인들이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자기 권익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채택한 문학적 모임의 시사이다. 이 점은 그들의 시사결성 취지에서도 확인된다.

송석원시사의 취지문인 「서옥계사수계첩후(書玉溪社修禊帖後)」에서 장혼은 같은 중인계층이면서 비슷한 나이에 서로 가까이 거처하는 친한 사람들끼리 시사를 결성하고 문학적 교유를 표방함을 밝혔다. 이 시사는 당대 위항문인들의 집결체이었다.

그리고 1797년에 『풍요속선』을 간행하여 『소대풍요』에 이어 위항인들이 정사년마다 그들의 시선집을 간행하는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위항문학은 이 송석원시사의 융성함과 그 구성원의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인하여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1818년(순조 18)까지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일사유사(逸士遺事)』(장지연, 회동서관, 1922)
『호산외기(壺山外記)』(조희룡, 아세아문화사영인, 1974)
『조선평민문학사』(구자균, 민학사, 1974)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류재건, 아세아문화사영인, 1974)
『소대풍요(昭代風謠)』(고시언외 편, 아세아문화사영인, 1980)
『풍요삼선(風謠三選)』(최경흠 편, 아세아문화사영인, 1980)
『희조일사(熙朝軼事)』(이경민, 민족문화사영인, 1980)
『대동시선(大東詩選)』(장지연, 아세아문화사영인, 1980)
『풍요속선(風謠續選)』(천수경·장혼 편, 아세아문화사영인, 1980)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와 그 문학」(성범중,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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