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의백(毅伯). 송여림(宋汝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악군수 송세훈(宋世勛)이고, 아버지는 임천군수 송남수(宋柟壽)이며, 어머니는 선무랑 유형필(柳亨弼)의 딸이다.
부친이 낙향하자 가까이에서 모셨으며 동거하는 여러 제매들과도 우애가 돈독하였다. 1604년(선조 37)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이 되고, 나이 거의 40이 되어 벼슬길에 나가 군자감·제용감봉사를 거쳐 1616년(광해군 8) 율봉도찰방(栗峯道察訪) 등을 역임하였다.
당시 선비들이 사장(詞章)에 기우는 것을 보고 “이름을 떨치고 어버이를 드러내는 길은 과거에 합격하는 데에 있으나 사예(詞藝: 시문을 지음)만을 전공함은 구차한 것으로 강경(講經)하는 것만 못하다.”고 지적하고, 이후 경학에 몰두하였다.
1623년 개시 문과(改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임명되었으나 이 해에 병사하였다. 뒤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