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은 지역에 따라 ‘소시랑(인천광역시 덕적도, 전라남도 보성 · 영광, 전북특별자치도 일대) · 소스랑(경상남도 영산) · 쇠시랑(전북특별자치도, 경상남도, 강원도 강릉) · 소스랭이(평안남도) · 쇠서랑’ 등으로도 불린다.
『농사직설』에는 ‘철치파(鐵齒擺 : 鄕名 手愁音)’로 표기되어 있고 하위지(河緯地)의 유서(遺書)에는 ‘소시랑(小時郎)’으로, 『고사신서(攷事新書)』 농포문(農圃門)에는 ‘소시랑(小屎郎)’, 『해동농서』에는 ‘철탑(鐵塔)’으로 올라 있다.
모양은 갈퀴모양으로 서너개의 발이 달리고 기역자로 구부러진 한쪽 끝에 나무자루를 박았다. 근래에는 서양의 포크처럼 발과 몸이 곧게 펴진 것을 쓰기도 하는데 이를 ‘호꾸’라 부른다. 한편, 강원도와 같이 나무가 흔한 곳에서는 가지가 두세 갈래로 벌어진 자연생의 물푸레나무를 이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수렁이 져서 소가 들어서기 어려운 논에서는 이것으로 파서 엎고, 덩어리진 흙을 깬다. 또, 밭의 흙을 파서 고르기도 하고 씨를 뿌린 뒤에 이것으로 흙을 덮기도 하며 두엄을 쳐내는 데에도 쓴다. 소가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의 흙도 이것으로 다루며 밭에서는 등 부분으로 흙덩이를 부순다.
쇠스랑으로는 남자 한 사람이 하루에 1,000여 평의 밭을 고를 수 있다. 발이 두개인 것은 무게가 1.3㎏, 세 개짜리는 1.7㎏쯤 된다. 근래에는 쇠스랑의 목 부분을 한 번 더 구부려 힘을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생산된다.
농가에서는 이것을 밤에 방문 밖에 놓아, 도둑을 잡기도 하였다. 달아나던 도둑이 쇠스랑 발을 밟으면, 자루가 벌떡 일어서서 이마에 큰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