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 예술·체육
  • 개념
서양에서 개발된 수성 그림물감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 워터 컬러.
이칭
  • 이칭워터 컬러(water color)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 미술사)
  • 최종수정 2024년 11월 2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수채화는 서양에서 개발된 수성 그림물감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이다. 서양 회화 전통의 수채화에서는 안료가 아라비아풀과 혼합된 상태로 만들어져 투명하게 그려진다. 18~19세기 초 영국의 데이비드 콕스, 존 콘스터블, 윌리엄 터너 등에 의해 물감과 기법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 프랑스 도예 기사 레미옹(Remion)에 의해서 처음 알려졌다. 1910년대 이후 전국 중학교급의 도화 시간에는 물감 값이 싼 수채화 교습이 기본적으로 실시되었다. 수채화는 물의 번짐과 종이의 흡수성 등이 전통 회화와 비슷해 국내 화단에 쉽게 보급되었다.

정의

서양에서 개발된 수성 그림물감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 워터 컬러.

연원 및 변천

영어로는 워터 컬러(water color)라고 한다. 물을 이용하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본질로 말한다면 그 기원은 천연안료를 물과 섞어서 그린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라스코 동굴벽화와 같이 선사시대의 그림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종이의 역사와 연관을 지어 보았을 때에는 3천 500년전 이집트에서 파피루스에 문자와 함께 그려진 그림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동양 회화 전통의 수묵화, 수묵 담채화 또는 채색화도 모두 수채화 개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유화와 대응되는 서양회화 전통의 수채화는 그 안료가 보통 아라비아풀과 혼합된 상태로 만들어져 투명하게 그려지는 것이 본색이다. 따라서 엄밀하게는 과슈 또는 템페라화처럼 다른 성분이 섞인 불투명 수채화와는 구분된다.

초기에 수채화는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제작되기 보다는 판화나 지도 등을 제작 할 때 채색을 위한 보조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다. 16세기부터 독일이나 네덜란드 화가들은 수채화를 유화의 습작이나 소묘를 한 후 담채(淡彩)로 엷게 채색하는 데 사용하였다. 수채화가 완전한 그림으로 인정된 시기는 19세기부터이지만, 16세기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수채화 특유의 미묘하고 풍부한 색채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제작하여 근대 수채화의 선구자로 불리운다.

그러나 물감과 기법의 획기적인 발전은 데이비드 콕스(David Cox, 1783∼1859), 존 콘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등에 의해 18∼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는 영국의 수채화가 일본으로 유입되어 수채화의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내용

우리나라에 서양풍 수채화 기법이 알려진 것은 1900년 대한제국 정부의 계획하에 서양식 공예 학교(도자기 중심)를 설립하기 위해 파리에서 데려왔던 프랑스 도예 기사 레미옹(Remion)에 의해서였다. 그가 서울에서 애초 약속이 무산된 가운데 약 5년간 무료하게 머무르면서 숙소와 서울 근교에서 수채화를 즐긴 사실이 기록과 사진으로 확인된다. 1906년에는 서울의 관립한성사범학교에서 도화(圖畵) 교사로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출신의 일본인을 데려왔던 사실로 미루어 일본에서 수입된 수채화 물감의 실기 교습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1911년에는 영국의 미술 학교에 유학한 또 다른 일본인 화가가 서울에 와서 양화속습회(연구소)를 개설하고 수채화와 유화를 지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1910년대 이후에는 서울과 전국 중학교급의 도화 시간에는 유화에 비해 물감 값이 싼 수채화 교습이 기본적으로 실시되었다. 수채화는 물의 번짐과 종이의 흡수성 등 전통회화와 비슷한 재료의 특성 때문에 쉽게 호응을 얻으며 보급되었고, 국내화단에 서양화를 정착․확산시키는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에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의 서양화부에는 유화와 함께 수채화의 출품 및 입선 · 입상 작품도 많았다. 특히 이인성(李仁星)은 수채화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내화단에 수채화에 대한 예술적 평가와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고, 근대 한국 미술사의 탁월했던 수채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세계미술용어사전』(월간미술편, 1992)

  • - 「근대 한국 수채화의 전개(최은하, 『한국근현대미술사학』1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6)

  • - 「양화정착의 배경과 그 개척자들」(이구열, 『한국근대미술사의 연구』, 미진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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