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수채화는 서양에서 개발된 수성 그림물감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이다. 서양 회화 전통의 수채화에서는 안료가 아라비아풀과 혼합된 상태로 만들어져 투명하게 그려진다. 18~19세기 초 영국의 데이비드 콕스, 존 콘스터블, 윌리엄 터너 등에 의해 물감과 기법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 프랑스 도예 기사 레미옹(Remion)에 의해서 처음 알려졌다. 1910년대 이후 전국 중학교급의 도화 시간에는 물감 값이 싼 수채화 교습이 기본적으로 실시되었다. 수채화는 물의 번짐과 종이의 흡수성 등이 전통 회화와 비슷해 국내 화단에 쉽게 보급되었다.
정의
서양에서 개발된 수성 그림물감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 워터 컬러.
연원 및 변천
다만 유화와 대응되는 서양회화 전통의 수채화는 그 안료가 보통 아라비아풀과 혼합된 상태로 만들어져 투명하게 그려지는 것이 본색이다. 따라서 엄밀하게는 과슈 또는 템페라화처럼 다른 성분이 섞인 불투명 수채화와는 구분된다.
초기에 수채화는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제작되기 보다는 판화나 지도 등을 제작 할 때 채색을 위한 보조적인 기능을 담당하였다. 16세기부터 독일이나 네덜란드 화가들은 수채화를 유화의 습작이나 소묘를 한 후 담채(淡彩)로 엷게 채색하는 데 사용하였다. 수채화가 완전한 그림으로 인정된 시기는 19세기부터이지만, 16세기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수채화 특유의 미묘하고 풍부한 색채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제작하여 근대 수채화의 선구자로 불리운다.
그러나 물감과 기법의 획기적인 발전은 데이비드 콕스(David Cox, 1783∼1859), 존 콘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등에 의해 18∼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에는 영국의 수채화가 일본으로 유입되어 수채화의 융성기를 맞이하였다.
내용
그러던 가운데 1910년대 이후에는 서울과 전국 중학교급의 도화 시간에는 유화에 비해 물감 값이 싼 수채화 교습이 기본적으로 실시되었다. 수채화는 물의 번짐과 종이의 흡수성 등 전통회화와 비슷한 재료의 특성 때문에 쉽게 호응을 얻으며 보급되었고, 국내화단에 서양화를 정착․확산시키는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922년에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의 서양화부에는 유화와 함께 수채화의 출품 및 입선 · 입상 작품도 많았다. 특히 이인성(李仁星)은 수채화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내화단에 수채화에 대한 예술적 평가와 인식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고, 근대 한국 미술사의 탁월했던 수채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 『세계미술용어사전』(월간미술편, 1992)
- 「근대 한국 수채화의 전개(최은하, 『한국근현대미술사학』16,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6)
- 「양화정착의 배경과 그 개척자들」(이구열, 『한국근대미술사의 연구』, 미진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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