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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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왕을 호위하기 위하여 설치한 임시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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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왕을 호위하기 위하여 설치한 임시관청.
내용

1777년(정조 1) 11월 대전(大殿)을 숙위하는 금군(禁軍)의 신변숙위 실수를 염려하여 건양문(建陽門) 동쪽에 별도로 설치한 왕의 호위소이다.

당시 세도가였던 홍국영(洪國榮)이 숙위대장으로 제수되어 금군의 숙위를 통솔하였다. 숙위대장은 궐내 각처의 위장(衛將)·부장(部將)·금군·도감군병(都監軍兵), 각 문의 수문장(守門將), 각 국(局)의 별장으로 하여금 매일 궐 내외와 3영(三營: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입직(入直)·순라(巡邏)의 유무상황과 군병의 교체를 보고하도록 통솔하였다.

또 위장·부장·내삼청금군, 금호문(金虎門)·홍화문(弘化門)·건양문의 장병, 각 국의 별장, 각 관청의 군병에 이르기까지 8일마다 교대할 때에는 숙위소에 그 내용을 정단(呈單 : 서면을 관청에 제출함.)하도록 하였으며, 숙위소로부터 숙위할 궁을 정해 보낸 뒤에야 이를 행하도록 하였다.

한편, 병조에서도 순검(巡檢)에 관한 모든 일을 숙위소를 통하여 거행하게 하였으므로 무릇 모든 문서는 숙위대장을 거치게 되는 폐단이 나타났다. 1780년 홍국영이 대역죄로 폐출된 이후 숙위소도 또한 혁파되었다.

참고문헌

『속대전(續大典)』
『정조실록(正祖實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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