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와티니 왕국 (eSwatini)

에스와티니의 국기
에스와티니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입헌군주국.
이칭
이칭
스와질란드 왕국, Kingdom of Swaziland
정의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입헌군주국.
개관

정식 명칭은 에스와티니왕국[The Kingdom of Eswatini, 옛 국명: 스와질란드 왕국(Kingdom of Swaziland)]으로, 1968년 영국에서 독립하였다. 면적은 1만 7364㎢, 인구는 143만 5613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음바바네(Mbabane)이다. 종족 구성은 스와지족이 97%이며, 기타 줄루족·통가족·상간족 및 유럽인이며, 공용어는 영어와 시스와티어(Siswati)이다. 종교는 개신교 40%, 가톨릭교 20%, 이슬람교 10%, 기타 토착신앙이 30% 정도이다.

기후는 아열대성기후로 주생산품은 설탕·펄프·철광·석면·석탄·감귤 등이다.

외자도입 증가와 농공생산의 호조,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자유무역 등에 힘입어 보기 드문 경제 안정을 이룩하고 있으나, 빈부의 차가 심하고 고용기회의 제약으로 많은 사람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광산에 취업하고 있다.

2017년 현재 국내총생산은 40억 2000만 달러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3,513달러이다.

정부 형태는 입헌군주제의 내각책임제로서, 의회는 각각 임기 5년의 상원(30석)과 하원(65석)의 양원제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당은 헌법으로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약사

스와질란드는 19세기 전반 네덜란드계 백인의 침략으로 그 영토가 형성되었으며, 1890년 영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공동 보호국으로 되었다가 1907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63년 입법심의회와 행정심의회를 설치하여 독립에 대비하였고, 1964년 6월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마침내 1968년 9월 6일 영국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여 영연방의 일원으로 입헌군주국 체제하에 소부자(Sobhuza) 2세가 집권하면서 1978년 10월에는 신헌법을 제정하였다. 1982년 8월 국왕 사망 이후 새 국왕 마코세티브(Makhosetive)의 성년식까지 섭정왕후 은톰비(Ntombi)가 국가원수직을 수행했으며, 1986년 4월 국왕 음스와티(Mswati) 3세가 즉위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일기 시작한 민주화 요구에 따라 1992년 11월 다당제 총선이 실시되었으며, 2003년 11월 들라미니(Dlamini) 총리가 취임하여 내각을 이끌었다.

기본외교정책은 우경중립의 비동맹이나 친서방 중립노선을 취하고 있으며, 1968년 유엔에, 1970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철저한 반공정책으로 이스라엘·대만과도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러시아·중국과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옛 국명은 스와질라드였다. 2018년 4월 에스와티니로 변경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1968년 11월 6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2008년 현재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입장을 계속 지지하고 있으며, 1970년 3월 의료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였다.

스와질란드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업체의 진출 및 양국 간 경제협력증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승용차·모터사이클 등을 무상원조하는 한편, 기술연수생 초청훈련과 의사파견 등을 실시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스와질란드 수출액은 316만 달러로 주종목은 직물류·의류·의료기구 등이며, 수입액은 1707만 달러로 펄프와 코크스가 주종목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6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5명의 한국민 교민과 15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스와질란드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제3세계론』(신정현, 일신사, 1986)
『아프리카 아프리카』(최평규 편, 국풍, 1983)
『아프리카정치론』(하경근, 일조각, 1974)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현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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