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예의문』은 조선 후기 승려였던 허백 명조(虛白明照, 1593~1661)가 불교의 다비법(茶毘法)을 정리한 책이다. 17세기 후반에 대흥사, 갑사, 통도사, 보림사, 옥천사 등에서 5차례 간행되었다. 당시에는 『석문상의초』, 『석문가례초』, 『승가예의문』, 『다비문』, 『다비작법』 등 불교 상장례(喪葬禮)에 관한 의식집이 빈번히 간행되었다.
허백 명조(虛白明照, 1593~1661)는 속성이 이씨(李氏)이다. 13세에 출가하여 청허휴정(淸虛休靜)의 법손인 송월응상(松月應祥)의 법맥(法脈)을 이었다. 정묘호란 등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는데, 정묘호란 때 승군(僧軍) 4,000여 명을 거느리고 안주성(安州城)을 지켰으며, 병자호란 때는 군량미를 모아서 제공하였다고 한다.
1권 1책. 현존하는 간행본은 ①1656년 전라 해남 대흥사본, ②1670년 충청 공주 갑사본, ③1670년(현종 11) 경상 양산 통도사본, ④1682년 전라 장흥 보림사본, ⑤1689년 해남 대흥사본, ⑥1694년 전라 담양 옥천사본 등이다. 『한국불교전서』 제8책에 수록되어 있는 저본(底本)은 1670년 통도사본이며, 대교본(對校本)은 1694년 옥천사본과 1670년 갑사본이다.
1670년에 간행한 통도사본 권말에 충현(冲絢)이 쓴 발문에 의하면, 허백이 다비법이나 승가의 예규를 모아서 간행하였다고 한다. 또한 통도사본에는 의암(義巖)의 「다비작법문(茶毘作法文)」이 첨가되어 있다.
『승가예의문(僧家禮儀文)』은 「명정서규(名旌書䂓)」 · 「상례전제절차(喪禮奠祭節次)」 · 「승상복도(僧喪服圖)」 · 「송장시금단규(送葬時禁斷䂓)」의 4항으로 구성된다. ‘명정(名旌)’이란 죽은 사람의 품계 · 관직 · 성씨를 기록한 깃발로서, 「명정서규」는 명정을 쓰는 규칙을 설명한 것이다. 명정을 쓰는 방식은 대종사(大宗師) · 염불인(念佛人) · 판사인(判事人) · 학도인(學道人) · 평상인(平常人)에 따라 달리 하고 있다.
「상례전제절차」에서는 상례를 모시는 절차를 설명하고 있는데, 발인(發靷)에서부터 쇄골법(碎骨法)까지를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이 가운데 「오방불청서규(五方佛請書規)」에서는 동 · 서 · 남 · 북 · 중앙 세계의 불(佛)을 청하여 각각 청색 · 백색 · 적색 · 흑색 · 황색의 번(幡)을 쓰는 서식을 규정하고 있다.
「승상복도」에서는 승려가 상복을 입는 기간에 대해 서술하였으며, 「송장시금단규」에서는 상례에 참여하여 밥을 먹거나 돈을 받는 등 불제자답지 않은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상가(喪家)에는 『금강경(金剛經)』과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다과와 떡을 가지고 가서 영혼을 위로하고 독경(讀經)하여 망자를 좋은 곳으로 천도할 것을 강조하였다.
부록으로 실린 「다비작법문」에서는 다비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삭발(削髮)→목욕(沐浴)→세수(洗手)→세족(洗足)→착군(着裙)→착의(着衣)→착관(着冠)→정좌(正坐)→시식(施食)→십념(十念)→송심경(誦心經)→기감(起龕)→거화(擧火)→하화(下火)→대중동송행원품(大衆同誦行願品)→습골(拾骨)→기골(起骨)→쇄골(碎骨)→산골(散骨)→진언개계(眞言開啓)→중화향화청(衆和香花請)의 순서이다.
『승가예의문』은 청허계 사명파 허백 명조가 편찬한 불교 상례집이다. 당시 부휴계의 벽암 각성(碧巖覺性)의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가 1657년(효종 8)에 백곡 처능(白谷處能)에 의해 전라도 징광사에서 개판되었고, 각성의 문도인 나암 진일(懶庵眞一)의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가 1660년(현종 1)에 간행되었다. 이처럼 17세기 중반 부휴계와 청허계 사명파를 대표한 이들이 불교 상례집을 편찬 · 간행한 것은 당시 서산계와 부휴계 등 문파와 법통이 성립하면서 유교식 종법에 의한 부계 친족 질서 재편이라는 시대적 변화상이 반영된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