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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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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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말을 타고 하는 여러 가지 동작 또는 그런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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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사람이 말을 타고 하는 여러 가지 동작 또는 그런 경기.
내용

말을 탄 사람과 말이 서로 혼연일체가 되어 엮어지므로 마술(馬術)이라고도 한다. 승마의 경기종목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진다. ① 마장마술(馬場馬術): 60×20m 넓이의 마장에서 정해진 운동과목으로 말을 다루는 마술. 연기는 규정코스와 연기과목이 정해져 있는 기종점(起終點)을 기억에 의해 전진하여 원형이나 파도형을 그리고, 다시 전회(轉回)·후퇴·정지·발진 등을 실시한다.

또한 매우 예술적인 패시지(passage: 運步를 조여 탄력을 붙인 수축속보)·피애프(piaffe: 전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행하는 수축속보)·2제적운동(二蹄跡運動: 비스듬히 옆으로 보행하는 것)·구보 중의 답보변환(踏步變換: 1∼4보마다) 등이 있다. 이 경기는 마치 연무하는 고전무용가처럼 말의 사지 운행에 우아한 율동미가 있어야 하며, 말과 사람이 일심동체가 되어 정연하게 해나갈 것이 요구된다.

② 장애물 뛰어넘기: 마장에 배치된 여러 유형의 장애물을 스타트에서부터 골라인까지 소정의 평균속도로 뛰어넘는 경기. 보통 장애물 수는 13, 14개이고 뛰어넘는 횟수는 16∼20회, 장애물 높이는 1.30∼1.60m, 웅덩이의 너비는 4.5∼5m 등이다. 두 종류 이상의 장애물을 배합하여 만드는 복합 장애물에는 1.50∼2.20m의 간격을 두고, 장애물 높이는 그 너비에 비례시킨다.

또한 높이 1.60m의 수직 장애물 2개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이 경기에서는 말을 다루는 기술이나 자세는 채점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요령은 말 척추의 골절과 신축의 성능을 발휘하게 해서 적절한 구름발과 뒷다리의 탄발을 구하여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한다.

③ 종합마술: 한 사람의 경기자가 같은 말로 제1일에 마장마술, 제2일에 내구경기, 제3일에 장애물뛰어넘기의 3종목을 실시하는 것. 한 종목이라도 실격하면 다른 종목도 실격이 되는데, 3종목 중 내구경기가 가장 중요시된다. 내구경기는 약 30∼32㎞의 광대한 야원 속에 산·계곡·하천 등 고르지 못한 지형을 정해진 속도로 주파하게 된다.

서기전 680년 제25회 고대 올림픽대회에 4두전차(四頭戰車)의 경마가 실시된 것을 시초로, 서기전 648년의 제33회 대회 때부터는 직접 말을 타고 경주하는 경마가 실시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승마는 이탈리아의 피나텔리(Pignatelli)가 나폴리에 마술학교를 설립, 마술가를 배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 마종(馬種)의 개량, 안장의 제정, 마술과 조련법의 체계화 등이 이루어지고, 1912년 11월 국제마술연맹(Federation Equestre Internationale, FEI)이 창설되면서부터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00년에 근대올림픽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경마위주의 경기에서 단일장애물뛰어넘기, 고장애뛰어넘기가 실시되었고, 1912년 제5회 대회 때부터는 순마술과 종합마술이 추가되었으며, 5종경기 중에 마술도 포함시키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주요한 무예의 하나로 마술이 발달하였으며, 신라에서는 기원전 탈해왕[脫解尼師今] 때부터 마숙(馬叔)이란 이름으로 기마훈련이 실시되었다. 특히 삼국시대부터 격구(擊毬)가 성행함에 따라 무예뿐만 아닌 독립된 경기로도 존재하여왔다. 조선시대에는 광해군 때부터 마술이 마상재(馬上才)라고 하여 무과채용고시의 과목으로 채택되면서 무예로서 발달하여 왔다.

그러나 기창이나 격구가 마술을 병용하였음에 비하여 마상재는 마술 그 자체로서 독립되어 독자적인 발달을 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상재는 말등에 서거나 눕거나 물구나무서기 등 말 위에서 갖은 재주를 다 부리는 기술이었다.

근대식 승마 조련이 시작된 것은 1896년 친위기병대의 창설과 1901년 육군무관학교의 기병훈련 교습으로부터이다. 그 뒤 1930년에 승마구락부가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에 용산연병장에서 제1회 조선승마대회가 개최되는 등 점차 승마인이 늘어나게 되었다. 1935년 제3회 전조선승마대회에서는 민병선·권태갑 두 선수가 대장애물과 중장애물 뛰어넘기에서 일본인을 물리치고 패권을 잡았으며, 그 뒤로도 많은 활약을 하였다.

광복 후 1946년 6월 대한승마협회가 창립되었고 7월 대한체육회 산하단체로 가입하였다. 같은 해 제1회 한국마술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광복 이후 우리 나라 승마의 발달에 독자적으로 이바지해온 단체로는 한국마사회와 대한학생마술연맹이 있다. 1952년 7월 대한승마협회가 국제마술연맹에 가입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제15회 헬싱키올림픽대회에 최초로 참가하였다.

근래의 경기전적을 보면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준우승을 하였고, 1988년의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종합마술에서 7위를 하였다. 1998년 12월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1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하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대한체육회70년사』(대한체육회, 1990)
『한국체육100년사』(대한체육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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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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