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평안북도 정주 출신.
정주 오산중학교(五山中學校)에서 수학하다가 만주 집안현(輯安縣)으로 망명하여 대종교(大倧敎)에 입문하였다.
1919년 오광선(吳光鮮) 등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고 대한독립단 조맹선(趙孟善)의 부관으로 활약하는 한편, 흥경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에 있는 반랍배학교(半拉背學校)에서 청년교육에 정진하였다.
1920년 12월에는 친일단체인 보민회(保民會)의 주구배를 숙청하고 일본영사관을 습격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1921년에는 독립단장(獨立團長) 조맹선의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중대장과 외무감(外務監)을 역임하고, 지청천(池靑天)을 따라 노령(露領)으로 건너갔다가 헤이허사변(黑河事變) 때 구사일생으로 유하현 삼원포(柳河縣三源浦)로 귀환하였다.
1924년 조병준(趙秉準)·신우현(申禹鉉) 등과 의민부(義民府)를 조직하고 섭외부장으로 활동하면서 동포들의 정착과 실력양성에 노력하였다.
1927년 독립단체통합운동으로 유하현으로 돌아와 독립군양성기관인 동명학교(東明學校)의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동지 김정산(金正山)과 공모하여 산성자(山城子) 일본영사관 습격 준비중 친일단체인 보민회 신모(申某)의 밀고로 일본헌병대에 붙잡혀 고문으로 옥사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