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근처에서 고인돌 5기가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은 섬진강의 지류인 보성강(寶城江)이 곡류하면서 형성한 강안의 충적대지상에 발달해 있다.
정식으로 발굴조사된 바는 없으나, 수차례의 지표조사를 통해 단면상에서 청동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집자리와 각종 토기·석기 및 토제품 등의 유물이 확인, 수습된 바 있다. 고인돌은 충적대지상에서 상석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 3기, 파괴된 상석 1기, 상부구조는 모두 파괴되고 고인돌의 하부구조인 석곽(石槨)시설만이 남아 있는 것 1기 등 모두 5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상석의 형태가 타원형인 경우는 1기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판석형인데, 타원형의 상석만이 그 밑에 지석(支石)을 노출시키고 있다. 집자리는 충적대지와 강 사이에 형성된 단면상에서 확인되었다. 현지표 하 80㎝ 지점에서 바닥의 흔적이 나타났다. 이 단면상에서 수습된 유물은 모두 토기로 대부분 적갈색 연질토기이고, 경질토기편은 1점뿐이다.
기형으로는 바리형[深鉢形]·포탄형[長卵形]·단지형[壺形]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원삼국시대의 집자리 바닥 아래에서는 곧은 아가리의 민무늬토기 1점이 수습되어 청동기시대 집자리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한편, 지표상에서도 청동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친 상당량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토기류로는 가지무늬토기[彩文土器]·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바리형토기·포탄형토기·시루·목항아리·회청색경질토기·각선문토기(刻線文土器) 등이 있다. 석기 및 토제품류로는 돌화살촉·홈자귀·간돌검·장방형돌칼·가락바퀴·돌끌·그물추 등이 수습되었다.
이들 유물 중 구멍무늬토기와 각선문토기편은 이제까지 전라남도지방에서 순천 대곡리, 보성 죽산리 등의 보성강유역에서만 출토되어 영산강유역과의 비교에 있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원삼국시대의 토기인 적갈색 연질의 포탄형토기 역시 보성강유역의 순천 대곡리·낙수리, 그리고 보성군 죽산리 하죽 유적 외에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출토 예가 없으며, 또 집자리 내에서 시루·바리형토기와 공반된다는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순천 구산리 유적은 같은 보성강유역에 발달된 낙수리·대곡리·죽산리 유적과 유사한 성격을 지닌 유적으로 전라남도지방의 청동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문화성격은 아직까지 공백상태로 남아 있는 마한(馬韓)사회를 이해하는데도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