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필사본. 질서란 생각날 때 빨리 적어둔다는 뜻이나, 실은 중요 내용에 대한 체계적 논술이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이익의 학풍은 송나라의 주희(朱熹), 이황(李滉)을 존숭하는 주리적(主理的)인 것이었으나, 경전 연구에 있어서는 성인의 근본 뜻을 얻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주희의 해석을 존중은 하되 묵수(墨守)하지는 않고, 회의, 정정해 나가는 비판적 연구 태도를 취하였다.
이익의 시경론(詩經論)을 살펴보면, 그는 육의(六義: 風·雅·頌·興·賦·比)의 해석, 왕풍(王風)·아(雅)·노송(魯頌) 등에 관한 설명,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시경』에 대한 평어(評語)인 시의 풍취는 순수하다는 ‘사무사(思無邪)’ 및 정(鄭)나라 음악을 음란하다는 ‘정성음(鄭聲淫)’의 해석에서 주희의 설을 회의 또는 비판하였다.
그는 ‘성(聲)’이란 음시(淫詩)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당시 새로 나타난 속악(俗樂)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익은 주희 등 송유(宋儒)들에 의해 의심받은 ‘소서(小序)’나 한당(漢唐)의 주석을 인용하지 않고, 일단 주희의 『시집전(詩集傳)』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그의 시 해석의 방법은 철저한 훈고나 고증보다 유교 사상인 의리를 위주로 한 사변적·주관적 해석 성향을 보여 주었다. 『시경』의 의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시교(詩敎)의 효용론적 입장에 있으면서 간서(諫書)의 사회 정치적 효용론을 더 중시하였다.
이익의 시경론은 주희의 학설에 대한 윤휴(尹鑴)·박세당(朴世堂)의 완곡한 회의의 흐름을 이으면서, 정조 시대의 개방적인 분위기 형성에 자극을 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