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상범 보호관찰소의 외곽단체로 1938년 7월 24일에 조직되었다. 민족운동 또는 좌익운동과 관련된 사상 전력자 중 친일 변절한 자를 맹원으로 하였으며, 그 수효는 1939년 7월 30일 현재 2,765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① 황도정신의 앙양과 내선일체의 강화, ② 반(反)황국사상의 파쇄·격멸, ③ 국책협력·전시협력의 강화를 강령으로 하면서, 맹원들의 사상정화, 생활쇄신 및 주의자의 포섭공작을 위해서 각종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요한 것은 1938년 12월부터 발간된 기관지 『사상보국』의 발행과 신궁참배, 일본군위문, 헌금갹출, 기타 반공시국강연회, 좌담회, 일본정신연구회 등의 개최였다.
또한, 맹원들은 형무소를 방문해서 복역중인 민족·좌익운동자들에게 설득공작을 벌였다. 창설 당시 본부조직 밑에 경성·대전·공주·개성·인천·청주·춘천지부 등을 두었으나, 사상범 보호관찰소와의 밀접한 연결을 위해서, 1938년 8월 27일부터 조직을 개편하였다.
즉, 지부는 전선 7개처의 사상범 보호관찰소 소재지인 경성·평양·함흥·청진·신의주·대구·광주에 두며, 그 밑에 분회를 두는 조직이다.
지부장은 서병조(徐丙朝:대구)·이승우(李升雨:경성)·현준호(玄俊鎬:광주) 등 보호관찰심사회 관계자이며, 연맹의 중심인물은 사상 전력자인 김두정(金斗禎)·김한경(金漢卿)·박영희(朴英熙)·장덕수(張德秀) 등이었다. 1940년 12월 28일 재단법인 대화숙(大和塾)에 통합됨으로써 해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