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리온 (Sierra Leone)

시에라리온의 국기
시에라리온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이칭
이칭
시에라리온 공화국, Republic of Sierra Leone
정의
아프리카 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개관

정식 명칭은 시에라리온 공화국(Republic of Sierra Leone)으로, 영연방의 하나이다. 대서양 연안 해안선 길이가 402㎞이며, 면적은 7만 1740㎢, 인구는 587만 9098명(2015년 현재), 수도는 프리타운(Free Town)이다. 종족은 맨데족 30%, 테므네족 30%, 크레올족 2% 등 13개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용어는 영어이나, 크레올·템네·망드 등의 부족어도 사용된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60%, 토착종교가 30%, 기독교가 10% 정도이다.

기후는 고온다습한 열대해양성기후이며, 다이아몬드·철강·보크사이트 위주의 광업과 코코아·야자·커피·생강 등의 수출작물생산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경제정책은 식량증산·어로진작·전력증산·외자유치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48억 4000만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766달러이다.

이 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대통령은 유일당인 전인민의회(APC)의 전국대표자회의에 의해 7년 임기로 선출되며,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124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시에라리온 인민당(SLPP), 평화와 자유당(PLP), 전인민회의(APC), 민주화를 위한 인민운동(PMDC)이 있다.

약사

시에라리온의 역사는 1787년 영국에서 이송되어 온 351명의 북아메리카 해방노예와 60명의 영국 매춘여성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1792년에는 캐나다에서 1,100명의 해방노예가 이주하여 오늘의 수도인 프리타운을 건설하였으며, 1896년 영국이 보호령으로 선언한 후에는 저항운동이 각처에서 일어났다. 그리하여 1920년부터 민족주의운동이 일어났으며, 1924년에는 입법심의회 의원 일부에 대한 선거가 실시되었다. 1951년에는 밀턴 마케이가 민족통일을 목표로 한 정당을 만들어 1958년에 자치정부의 수상이 되었고, 1961년 4월 27일 영국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하였고, 1978년 6월 신헌법을 제정하였다.

처음에는 전인민회의당(APC)에 의한 일당체제를 유지해오다가 1991년 복수정당제를 인정하는 헌법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으나, 1992년 군부쿠데타로 스트라서 대위가 국가잠정평의회의장에 취임했으며, 뒤이어 1996년 1월에 또다시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2007년 9월 코로마(Koroma) 대통령이 취임하였고, 2018년 4월 야당 지도자 줄리어스 마아다 비오(Julius Maada Bio)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돼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대외정책으로는 우경중립을 표방하며 영국·프랑스와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비동맹중립노선을 추구해 왔으며, 1961년 유엔에, 1964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는 시에라리온의 독립 직후인 1961년 6월 이 나라를 승인하였으며, 1962년 6월 25일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였고, 1974년 11월 상주공관을 개설하였으나 2006년 현재 주 나이지리아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이 나라는 농업개발을 최우선사업으로 삼고 있어 한국의 농촌개발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분야에 대하여 한국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진 파견, 기술훈련생 초청, 자조사업지원, 농기구차량 등의 무상원조, 전문인력 파견 등을 실시하고 있다. 1969년 5월에는 무역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77년 12월에는 문화 협정, 1978년 5월에는 무역증진 및 경제기술협력 협정, 1983년 12월에는 태권도협력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90년 12월에는 KBS·SLBS 간 방송협력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대 시에라리온 수출액은 2015년 현재 655만 달러로 주종목은 기계류, 합성수지, 섬유제품이며, 수입액은 1,050만달러로 주종목은 어류와 금속광물이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19명의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15년 현재이수건설 근로사 4명과 41명의 한국 교민이 체류하고 있다.

북한과는 1971년 10월 14일 수교하고, 1974년 8월 상주공관을 개설한 바 있으나, 1991년 2월 폐쇄하고, 2008년 현재 주 기니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1971년 8월 경제 및 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74년 5월에는 과학교육 및 문화 협정, 1984년 3월에는 우편 및 전기통신 협정, 1987년 9월에는 농업경제기술 협정, 1988년 2월에는 평양·프리타운 친선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제3세계론』(신정현, 일신사, 1986)
『아프리카 아프리카』(최평규 편, 국풍, 1983)
『아프리카정치론』(하경근, 일조각, 1974)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현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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