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

  • 역사
  • 인물
  • 남북국
통일신라의 제53대(재위: 913년~917년) 왕.
이칭
  • 시호신덕(神德)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917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두진 (국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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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통일신라의 제53대(재위: 913년~917년) 왕.

개설

재위 912∼917. 성은 박씨, 이름은 경휘(景暉 또는 景徽), 본명은 수종(秀宗). 아달라이사금의 원손으로 아버지는 정강왕 때 대아찬(大阿飡)을 지냈고 선성대왕(宣聖大王 또는 宣成大王)으로 추봉된 예겸(乂兼, 또는 銳謙)이다.

일설에는 예겸은 의부(義父)이고 친아버지는 흥렴대왕(興廉大王)으로 추봉된 각간 문원(文元)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성호대왕(成虎大王)으로 추봉된 순홍(順弘)의 딸 정화부인(貞花夫人)이며, 비는 헌강왕의 딸인 의성왕후(義成王后 또는 懿成王后)이다.

슬하에 승영(昇英)·위응(魏膺)이 있었는데, 승영은 경명왕이 되었고 위응은 경애왕이 되었다. 신덕왕대의 신라는 실제로 경주 지역을 다스리는 데 그쳤고, 국토의 대부분은 궁예(弓裔)와 견훤(甄萱)의 세력권 속에 들어가 있었다.

궁예의 부하인 왕건(王建)이 나주를 정벌한 이후 그들의 패권다툼이 더욱 치열해가는 동안 신라의 명맥은 겨우 유지되는 형편이었다. 916년에 이르러서는 견훤이 대야성(大耶城 :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을 공격하여 비록 이를 함락시키지는 못하였으나, 그것은 곧 신라의 심장부에 비수를 겨누는 격이 되었다.

이 때의 신라왕실은 스스로 후백제나 태봉(泰封)의 공격을 막아낼만한 힘이 없었다. 장지는 죽성(竹城 : 위치 미상)이라고도 하고 혹은 화장하여 잠현(箴峴)에 묻었다고도 한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고려사(高麗史)』

  • - 「후삼국시대의 지배세력의 성격」(김철준, 『이상백박사회갑기념논총』, 1964 ; 『한국고대사회연구』, 지식산업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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