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재유고』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 발간 연대가 상세히 고증되지는 않았으나, 1710년(숙종 36) 여름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1922년『신독재유고』에 김집의 편저인 『의례문해속(疑禮問解續)』과 연보 및 기타 부록을 증보·개편하여 『신독재전서』가 간행되었다. 『신독재전서』는 원집 16권, 부록 4권, 합 20권 9책으로 되어 있으며, 김집의 후손 김상현(金尙鉉)의 발문이 실려 있다. 『신독재유고』를 뒤에 간행한 『신독재전서』에 대해 구본(舊本)이라 한다.
『신독재전서』의 간행 연대는 그동안 불확실하였으나, 권16의 연보 끝에 “그 21년 뒤 임술(壬戌)에 전서(全書)가 이루어졌다”고 한 기록과 김상현의 연보발(年譜跋)에 “문경공(文敬公) 연보를 오래도록 완성하지 못하다가 선생 사후 200여 년이 지나서 간행하게 되었다”고 하며 연대를 임인(壬寅)이라 한 사실로 미루어보아, 연보를 중간한 임인년은 1902년이고, 그 21년 뒤가 1922년 임술년이 되어, 결국 이 해가 『신독재전서』의 간행년이 된다.
『신독재전서』에 추가된 『의례문해속』은 김장생(金長生)의 『의례문해(疑禮問解)』에 대한 속편으로 편찬한 것이다. 그 간행 경위를 보면, 1694년(숙종 20) 윤증(尹拯)을 중심으로 동지들이 상의하여 『의례문해』와 중복되는 것을 피하고, 총 150여 조를 교정하여 출간하였다. 윤증의 발문에 따르면 주자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 대한 속편 제작의 예를 따라 책이름을 붙였으며, 간행에 있어서도 단행본이 아니라 『의례문해』 4권과 합본하여 한 질로 만들었다고 한다.
연보는 1871년(고종 8) 김집의 족손 김기홍(金箕洪)과 김재근(金在謹) 등이 편집하고 김재언(金在彦)이 교정한 것을 사손(嗣孫) 김영종(金永宗)이 간행한 것으로, 1902년에 중간되었다. 1978년 광산김씨 종중에서 『신독재전서』와 『사계전서』를 합본하여 『사계·신독재전서』를 간행하였고, 앞에 김집의 신도비명을 번역해서 실었다.
원집 13권 6책, 부록 2권 1책, 합 15권 7책.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에는 「만송영천이창(挽宋榮川爾昌)」·「인조대왕만장(仁祖大王挽章)」 등 만시 41수, 권2에는 「우후등산(雨後登山)」·「효차이백(曉次李白)」 등 시 187수가 실려 있다. 권3에는 소(疏) 42편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 사직소이나 당시 복잡하였던 내외 정세에 관계되는 소도 많이 있다. 권4에는 경연주사(經筵奏辭) 2편이 실려 있다. 권5는 잡저(雜著)인데, 제문(祭文)을 비롯한 잡문 9편이 실려 있을 뿐 학문적인 논저는 보이지 않는다.
권6에는 서(書) 18편, 권7에는 서 88편이 실려 있는데, 주로 김상헌(金尙憲)·이경석(李景奭)·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윤선거(尹宣擧) 등과 주고받은 서간으로 시사(時事)나 문후(問候)에 관한 것보다는 학문적인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권8에는 묘갈(墓碣) 16편, 권9에는 묘지명(墓誌銘) 8편, 권10에는 묘표(墓表) 4편, 권11에는 「황고사계선생행장(皇考沙溪先生行狀)」 등 행장(行狀) 4편, 권12에는 「중봉조헌선생시장(重峯趙憲先生謚狀)」 1편, 권13에는 상례(喪禮)의 절차 60조항을 경전을 인용하여 풀이한 「고금상례이동의(古今喪禮異同議)」가 실려 있다.
권14는 부록상(附錄上)으로 1656년(효종 7) 김수항(金壽恒)이 임금의 명을 받아 지어 올린 사제문(賜祭文), 유계(兪棨)가 지은 「효종대왕묘정배향교서(孝宗大王廟庭配享敎書)」, 「온천행행시견예관치제문(溫泉行幸時遣禮官致祭文)」을 비롯한 제문 7편, 「연산돈암서원종향제문(連山遯巖書院從享祭文)」·「임피봉암서원봉안제문(臨陂鳳巖書院奉安祭文)」·「고사문(告祠文)」 등이 실려 있다. 권15는 부록하(附錄下)로 송준길이 찬한 김집의 시장(諡狀), 송시열이 찬한 신도비명 및 묘지명, 이유태(李惟泰)가 찬한 묘표, 윤선도(尹善道)가 기록한 유사(遺事), 권극중(權克中)이 기록한 유사가 실려 있다.
『신독재전서』는 권1·2에 시, 권3에 소, 권4·5에 서, 권6에 서(序)·지(識)·잡저·고유문·제문, 권7에 묘갈, 권8에 묘지(墓誌)·묘표, 권9·10에 행장, 권11에 시장(諡狀), 권12에 「고금상례이동의」, 권13·14에 『의례문해속』, 권15·16에 연보, 권17∼20에 부록이 수록되어 있어 『신독재유고』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김집 부자의 행장이 모두 실려 있다는 점, 그리고 김장생·김집 부자의 문하에서 기호학파의 유수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모두 정계의 요직을 차지하고 당쟁의 가운데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조선 후기 유학사 연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특히 『의례문해속』은 조선조 예학 및 성리학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