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瀆)이란 큰 강을 뜻한다. 신라사독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거행한 제사로, 신라 영토에 해당하는 동·서·남·북 사방의 강이다. 고대인들은 강에는 수신(水神)이 있어 강을 지배하고 국토를 수호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수신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물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생명 자체도 근원적으로는 물에서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물을 담고 있는 제장(祭場)인 강에 대한 제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에도 있었다. 그리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난 이후 당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던 전국의 명산대천에 대하여 국가가 제사하는 제도를 마련하였고, 이를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구분하면서 사독에 대한 제사는 중사에 포함시켰다.
동독(東瀆)은 퇴화군(退火郡)의 토지하[吐只河, 일명 참포(槧浦): 지금의 포항시 흥해면의 곡강(曲江)으로 추정]이며, 남독은 삽량주(歃良州)의 황산하[黃山河, 지금의 양산군 황산강(黃山江)], 서독은 웅천주(熊川州)의 웅천하[熊川河 : 지금의 공주 금강(錦江)], 북독은 한산주(漢山州)의 한산하[漢山河 : 지금의 서울 한강(漢江)]이다.
사독은 사진·사해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동·서·남·북 사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통일신라의 사방관념·영역관념과 관련이 있으며, 통일신라의 외곽 지대로 국토의 주위를 둘러가며 국경을 이루었다. 4독에 대한 제사는 큰 강을 관장하는 수신에 대한 제사로, 수신의 신체(神體)는 대체로 용신이었다.
사독 제사는 중국에서 비롯된 제도이다. 중국 역대 왕조는 국토 내의 더러운 것을 씻어내주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주는 등 국가와 민생에 대한 공덕이 크다고 하여 사독을 제사하였고, 수(隋)·당(唐)나라 이후에는 국가의 제사를 대사·중사·소사로 나누면서 중사의 하나로 제사하였다. 당대에는 사진·사독의 신을 공(公)으로 봉하기도 하였다.
신라의 사독 역시 오악·사진·사해와 함께 중사에 편제되었다. 고려에서는 악·해·독에 대한 제사가 잡사(雜祀)에 편제되어 있다. 조선은 4악을 두고 사진을 두지 않았으며 3해와 7독을 설치하였다. 이처럼 신라는 고려·조선과 달리 사독과 사해는 물론이고 오악, 사진을 두어 천자국의 산천규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고려사』지리지에 보이는 수신제장 중 양진과 웅진은 신라 4독의 하나였던 한산하와 웅천하였으며 조선시대 7독의 하나인 웅진과 한산하이기도 하였다.
신라는 삼국통일의 결과 영토가 확대됨에 따라 전국의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제도를 확충 정비하였다. 이것은 신기(神祇) 세계의 재편성과 전국의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권 장악을 통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통치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신라사독은 국방 수호의 의미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각 방면의 일정한 정치적 세력을 진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하였다. 동독 토지하는 잘 알 수 없으나, 남독 황산하는 법흥왕 이후 금관가야 세력을, 서독 웅천하는 통일 이후 신라에 편입된 구백제 세력을, 북독 한산하는 진흥왕 이후 신라 영토에 편제된 구고구려세력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