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사해 ( )

고대사
제도
신라시대 국가에서 거행한 제사 대상인 국토 사방의 바다.
정의
신라시대 국가에서 거행한 제사 대상인 국토 사방의 바다.
개설

신라사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국가의 제사 대상이 되었던 동·서·남·북 사방의 바다이다. 신라 사람들은 바다에는 용왕이 있어 바다를 지배하고 국토를 수호한다는 해양신앙을 가지고 용왕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내용

신라는 통일 이전 바다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바다에 대한 제사도 지냈다. 이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여 영토가 확대됨에 따라 명산대천 제사를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로 등급화하였는데, 신라사해는 중사에 편제되었다.

사해 중 동해는 퇴화군(退化郡 : 지금의 포항시 흥해면)의 아등변[阿等邊 : 일명 근오형변(斤烏兄邊)]이고, 남해는 거칠산군(居漆山郡 : 지금의 부산 동래)의 형변(兄邊)이며, 서해는 시산군(屎山郡 : 지금의 군산시 임피면)의 미릉변(未陵邊)이고, 북해는 실직군(悉直郡 : 지금의 삼척)의 비례산(非禮山)이다. 사해는 사진·사독과 마찬가지로 신라의 동·서·남·북 사방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통일신라의 사방관념·영역관념과 관련있으며, 통일신라의 외곽 지대로 국토의 주위를 둘러가며 국경을 이루고 있는 형상이다.

사해에 대한 제사는 사해를 관장하는 해신(海神), 용왕에 대한 제사라고 생각된다. 고대 해신 숭배와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는 완도 청해진 유적, 부안 죽막동 유적과 제주 용담동 유적이 대표적이다. 죽막동 유적에 있는 해식(海蝕) 동굴에는 해신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 있는데, 이 곳에서 유적 앞바다를 지키는 해신인 수성할미(혹은 개양할미)가 나왔다고 한다.

변천과 현황

사해 제사는 중국에서 비롯된 제도로, 중국 역대왕조는 바다에 대한 제사를 지냈고 수(隋)·당(唐)나라 이후 국가의 제사를 대사·중사·소사로 나누면서 사해를 중사의 하나로 제사하였다. 당에서는 오악과 사해의 신을 모두 왕(王)으로 봉(封)하기도 하였다.

신라의 사해는 오악과 사진, 사독과 함께 중사에 편제되었다. 고려의 경우는 악·해·독에 대한 제사가 잡사에 편제되어 있다. 조선은 4악을 두고 사진을 두지 않았으며 3해와 7독을 설치하였다. 이처럼 신라는 조선과는 달리 사해와 사독은 물론이고 오악과 사진을 두어 천자국의 산천규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고려사』 등에는 남해신과 동해신이 보이며, 오해신·오방산해신군(五方山海神君)도 보인다. 따라서 고려시대 바다에 대한 제사는 오해제, 즉 동·서·남·북·중해에 대한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 해제(海祭)는 『세종실록』오례에 동·남·서해가 나온다.

의의와 평가

신라는 삼국통일의 결과 영토가 확대됨에 따라 전국의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제도를 확충하고 정비하였다. 이것은 신기(神祇) 세계의 재편성과 전국의 명산대천에 대한 국가의 제사권 장악을 통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통치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사해는 국방 수호의 의미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각 방면의 일정한 정치적 세력을 진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해 중 동해 아등변은 파사왕대 신라에 편입된 음즙벌국과, 남독 형변은 탈해왕대 신라에 편입된 거칠산국과, 북해 비례산은 102년(파사왕 23)과 104년(파사왕 25)에 신라에 병합된 실직국과 관련 있다. 서해 미릉변은 구백제세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채미하, 혜안, 2008)
「실직과 신라의 ‘북해’제사」(박승범, 『이사부와 동해』 9, 2015)
「신라의 사해와 사독」(채미하, 『역사민속학』 26, 2008)
「신라 중사의 '사해'와 해양신앙」(김창겸, 『한국고대사연구』 47, 2007)
「신라 명산대천제사의 사전 편제 이유와 특징」(채미하, 『민속학연구』 20, 1994)
「신라 대사·중사·소사의 제장연구」(최광식, 『역사민속학』 4, 1994)
「新羅の祀典と名山大川の祭祀」(浜田耕策, 『泡沫集』 4,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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