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례 ()

목차
관련 정보
유교
의례·행사
국가에서 행하기로 규정한 다섯 의례 를 지칭하는 용어. 국가의례.
이칭
이칭
왕조례(王朝禮), 국가례(國家禮)
정의
국가에서 행하기로 규정한 다섯 의례 를 지칭하는 용어. 국가의례.
개설

유학의 실천적인 측면은 예(禮)로 드러나고, 예는 바로 치인(治人)의 주된 매체였다. 이러한 유학의 기치를 내걸고 건국한 중국 황실이나 제후국 왕실은 현실에서의 예의 실천을 위해 국가 의례를 다섯 가지로 규정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오례(五禮)이다.

오례는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를 가리킨다. 『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에는 오례의 순서가 이와 같이 되어 있는 데 반해, 조선의 오례는 당나라 두우(杜佑)가 편찬한 『통전(通典)』의 체제를 따라 길례・가례・빈례・군례・흉례 순으로 재편되었다. 중국이나 고려 · 조선에서는 이 오례를 ‘왕조례(王朝禮)’ 혹은 ‘국가례’라고 하였다. 반면, 그 아래 공 · 경 · 대부나 사대부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 등 사례(四禮) 체제를 따랐다. 사례는 황실 · 왕실의 오례보다 등급이 낮고 규모가 작았다. 조선의 사대부가 예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데 참고하고 활용한 예서는 송나라 주희(朱熹)가 편찬한 『주자가례(朱子家禮)』였다.

연원 및 변천

중국에서 25사(史)로 대표되는 역사서 중 『진서(晉書)』 「예지」에서 최초로 오례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진서』 「예지」는 『주례(周禮)』의 오례를 원용하여 항목을 설정하였고, 이후 수 · 당을 거치면서 오례의 의주(儀注)를 마련하였으며, 당나라의 『개원례(開元禮)』로 정리되었다. 『개원례』는 오례의 구조로 짜인 국가례의 모델이 되었는데, 한국사에서도 항상 이를 표준으로 참고하였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학(國學)으로 채택한 만큼 예치(禮治)를 강조하였다. 조선의 국가 전례는 태종대부터 정비에 들어가 세종대에 본격적으로 정리되었다. 이때 국가 전례는 길례 · 가례 · 빈례 · 군례 · 흉례 순으로 된 오례 체제를 갖추었고, 조선 왕실 최초의 국가전례서인 『세종실록』 「오례」(1451)에 정리되었다. 『세종실록』 「오례」 이후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1474),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1744),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1751),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1788), 『춘관통고(春官通考)』(1788) 등은 모두 오례 체제를 갖춘 국가 전례서였다. 이 중 『국조속오례의보』는 『국조속오례의』를 보완하기 위해 편찬되어 길례와 가례의 내용만 있고 나머지 빈례, 군례, 흉례의 내용이 없다. 보완을 위해 편찬되었으므로 오례 체제를 갖추고자 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밖에 흉례만을 위해 1752년과 1758년에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각각 편찬하여 예외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조선에서 편찬된 국가 전례서는 오례라는 큰 틀을 유지하였다.

내용

오례의 세부 내용을 『춘관통고』를 참고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춘관통고』가 『국조오례의』와 『국조속오례의』, 『국조상례보편』 등에 수록된 각 예제의 왕대별 고실(故實)과 의절에 필요한 기물의 도설(圖說), 의주를 항목별로 집대성해 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길례는 제사와 관련된 모든 의례를 말한다. 사직(社稷), 종묘(宗廟), 영녕전(永寧殿), 기곡사직(祈穀社稷), 기우사직종묘(祈雨社稷宗廟), 기곡사직섭사(祈穀社稷攝事), 경모궁(景慕宮), 풍운뇌우(風雲雷雨), 악해독(嶽海瀆), 선농(先農), 선잠(先蠶), 우사(雩祀), 문선왕(文宣王), 역대시조(歷代始祖), 저경궁(儲慶宮), 육상궁(毓祥宮), 연호궁(延祜宮), 영성(靈星), 명산대천(名山大川), 사한(司寒), 마조(馬祖), 선목(先牧), 마사(馬社), 마보(馬步), 칠사(七祀), 영제(禜祭), 노인성(老人星), 마제(禡祭), 포제(酺祭), 둑제(纛祭), 여제(厲祭), 계성사(啓聖祠), 관왕묘(關王廟), 선무사(宣武祠), 의소묘(懿昭廟), 문희묘(文禧廟), 사현사(四賢祠), 능 · 원(園) · 묘(墓), 진전(眞殿), 원묘(原廟), 궁(宮) · 묘(廟), 성균관(成均館) · 향교(鄕校), 소격서(昭格署) 등에 지내는 제사가 해당한다.

가례에는 국왕과 왕후의 혼례, 왕세자・왕세자빈, 왕세손・왕세손빈 등의 혼례와 책봉(冊封) 및 이와 관련된 모든 의식이 포함된다. 중국 외교 관련 각종 사실, 국왕의 등극[즉위]과 전위, 왕세자・왕세손 청정(聽政), 수렴청정과 환정(還政), 국호(國號), 국왕과 왕후의 탄일(誕日), 관복(冠服)・노부(鹵簿)・악기(樂器)・준뢰(尊罍)・궤장(几杖)・의장(儀仗) 등의 도설, 국왕에게 문안 드리는 조참(朝參), 학문과 정사(政事)를 논하는 경연(經筵), 왕비・왕세자・왕세손・왕자・왕손・공주・옹주 및 종친과 문무관 등의 혼례, 왕세자・왕세손 등의 관례(冠禮)와 입학(入學), 대왕대비・왕대비・왕비・대전(大殿)・혜경궁 등에게 존호를 올리는 상존호(上尊號), 왕세자・왕세제(王世弟)・왕세손 등의 책봉, 조정에 나아가 임금에게 하례하는 의식 및 하례 때 바치는 물품, 사신(使臣)・외관(外官)・제신(諸臣)의 하례, 충신・효자・열녀의 정포, 신하에게 내리는 시호(諡號), 후사를 잇는 계후(繼後), 잔치, 나이 70이 넘은 정2품 이상의 문신들을 경로 및 예우하기 위한 기사(耆社), 온천・왕릉 등의 거둥, 국왕・왕후의 태반을 묻은 태봉(胎峯), 어진의 도사(圖寫)・봉안・표제(標題)의 서사(書寫), 과거(科擧) 등에 관한 내용이 해당한다.

빈례는 중국의 명과 청, 일본, 유구국(琉球國)에서 온 사신을 접대하는 예를 말한다.

군례는 군사나 군대에 관한 의례이다. 여기에는 활쏘기, 강무(講武), 사냥, 열병의식, 일식・월식에 행하는 의식, 전염병이나 액귀를 쫓는 나례(儺禮) 등에 관한 내용이 해당한다.

흉례는 사망한 국왕이나 왕후를 애도하는 상례로, 상장(喪葬)에 관한 모든 의식 절차에 관한 내용이 해당한다.

참고문헌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
『신당서(新唐書)』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민창문화사 영인본‚ 1994)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춘관통고(春官通考)』(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영인본‚ 1975∼1977)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이현진, 글항아리, 2015)
「경모궁 제례의 위상 변화」(이현진, 『사도세자 이선』, 수원화성박물관, 2015)
「정조대 국가전례서의 편찬과 그 성격: 『국조오례통편』과 『춘관통고』의 「흉례」를 중심으로」(이현진, 『영·정조대 문예중흥기의 학술과 사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4)
「조선시대 종묘의 부묘 의례와 성격」(이현진, 『서울학연구』 43, 201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