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신성(神性)과의 본원적 동질성을 전제하고 신과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형태의 중개적 요소도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사상은 동양적 종교에서 지배적이나 인간과 신간의 근본적인 간격과 차이를 전제로 하는 유일신론 종교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신비주의의 문제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현저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우선, 1907년 평양 대부흥회 때 야기된 상황은 바로 신비주의적 요소가 기독교에 침투하여 생겨났다는 선교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그러나 보다 본격적인 것은 1930년대 초반에 활동하던 이용도(李龍道)의 사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와 나와의 합일’이라는 신비적 일체감의 경험이 중심을 이루면서 당시 조선민족의 수난과 십자가에서 고난 받는 예수가 ‘한 몸을 이룬’ 모습으로 나타났다.
신비주의 경험은 언어의 제한성을 깊이 느끼게 하는데, 그로 인해 체험의 핵심을 나타낼 표현은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는 식의 부정적 방식이거나 성애적(性愛的)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용도의 경우 그리스도를 신랑, 자신을 신부라고 말했으며, 침실·포옹·속옷 등과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다.
또한, 신과 인간 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주장함으로써 교회의 의식이나 교리 등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신비적 일체감 형성에 방해물이라고 주장하여 기존의 교회와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1933년 백남주(白南柱)·한준명(韓俊明)·유명화(劉明花) 등의 원산신학산파가 중심이 되어 ‘조선예수교회’를 만든 것은 이러한 갈등의 표출이라고 여겨진다. 이용도 이후 한국 기독교계에서 계속 신비주의운동이 일어났지만 대부분 이단으로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