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생. 1883년까지 한학을 수학, 1907년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제1회로 졸업한 7명 중 한 사람으로, 한국인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고 곧 독로회(獨老會)의 파송으로 외지선교사로서 제주도에 파송되었다.
1918년광주의 북문내교회(北門內敎會) 초대목사로 부임하였고, 1920년 전라 노회장·장로회총회 부회장, 다음해에는 총회장에 피임되었다.
2년간의 병고로 휴양한 다음에 1923년 전라남도 순천교회, 다음해 고흥교회, 1927년 제주도 성내교회, 1934년에는 칠순의 노구로 여수의 남면 우학리 교회에서 각각 목회활동을 하였다.
1938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호남지방의 교회지도자들과 결속하여 싸우다가 검속되어 광주형무소에 압송되기 직전 심한 고문으로 졸도, 병 보석되었다. 그러나 그 때 받은 심한 상처로 1942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