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대한제국의 기병(騎兵) 병정으로 있다가 일본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어가고 일제에 의하여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음력 1907년 7월 의병 활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경기도 이천(利川)으로 내려가 김봉기(金鳳基)의 의병부대에 들어갔다. 수차례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패배하자 양근(楊根)의 조인환(曺仁煥)의 의병 부대로 거처를 옮겼다.
8월에 의병들과 함께 광주분원(廣州分院)에서 교전을 하다가 조인환이 행방불명이 되자 의병 부대원들에 의해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9월 하순에는 일본군 1개 소대를 공격하여 곤경에 몰아넣었으나 곧 이어 투입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타격을 입었다.
이후 양근 · 광주 등지에서 활약하다가 10월에는 강원도 인제(麟蹄)로 옮겨가 민긍호(閔肯鎬) 의진과 합류하였다. 1만여명으로 불어난 민긍호 의병진 휘하에서 활동하면서 강원도 인제 · 양양(襄陽) · 춘천, 충청북도쌍호(雙湖), 경상북도 송면장(松面場)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이후 13도 연합 의병에 참여하여 서울 진공 계획을 추진하였으나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뒤 1908년 6월(양력) 서울에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