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바느질을 시작하였을 때부터 실이 있었을 것이고, 실을 감아두는 실패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나 나뭇조각, 동물의 뼈 등에 실을 감아놓고 쓰다가 차츰 장식화하였고, 형태도 다양해졌으리라고 추측된다.
현존 유물은 조선 후기의 것으로 화각장식, 자개박은 나전칠기 등 화려한 무늬가 있는 상류층의 실패와 투박하고 장식이 전혀 없는 민간용의 것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유물로 본 실패의 형태는 대개 다음과 같다.
① 직육면체형 : 가장 기본형으로 장식이 전혀 없는 긴 나무토막이다. 너비 3.5∼7㎝, 길이 10∼25㎝, 두께 0.8㎝ 내외로 되어 있다. 짧은 것에는 한 가지 실을 감았고, 긴 것에는 굵기가 다른 두세 가지의 실을 감았다. 서민층의 실패는 실용성에 치중하여 아무 장식이 없고 투박하여 형태가 컸다. 상류층의 것은 자개로 석류문이나 꽃문을 박은 화려한 것이었다. 어떤 것은 여기에 더하여 양마구리를 2㎜ 두께의 상아로 물리기도 하였다.
② 납작한 원통형 : 화각제 실패는 대개 이와 같은 모양이다. 단면이 타원형으로 중앙 쪽이 1∼2㎝로 불룩하며 길이 10∼15㎝, 너비 3.5∼7㎝이다. 실패 전면에 화각을 입히고 홍·황·녹 3색으로 모란문을 그리거나 새·박쥐 등을 그렸다.
③ 오목렌즈형 : 실이 감기는 부분을 잘룩하게 하여 실을 감았을 때 불룩해진 모양이 직육면체형보다 예쁘다. 잘룩하게 만든 모양에도 밋밋한 것, 완만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무늬가 없는 것과 자개로 여러 가지 꽃과 잎을 섞어 도안한 것 등이 있다.
④ 이중 오목렌즈형 : 잘록한 것을 2개 연달아 붙인 모양으로 두 가지 실이나 굵기가 다른 실을 감을 수 있게 하였다. 3개를 붙인 모양도 있다. ⑤ 십자형 : 한가지 실을 상하 좌우로 감는 것이다. 서민용은 나무에 조각을 하거나 아무 무늬가 없었고, 상류층은 자개를 박아 여러 가지 무늬를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