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쟁산조는 산조의 음악 양식을 아쟁으로 구현한 음악이다. 아쟁은 고려~조선시대 궁중 관현악에 쓰였으나 20세기 창극 발달로 저음역 기악이 필요해지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기존 아쟁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박성옥·정철호 등이 소형화와 말총 활 사용, 새로운 연주 기교를 개발해 민간 악기와의 조화를 가능하게 했다. 소아쟁산조는 1948년 처음 연주되었고, 1950년대 이후 한일섭·정철호·장월중선이 발전시켜 여러 제자로 전승되었다. 아쟁산조는 진양~자진모리 구성, 계면조 중심, 빠른 악장이 없으며 저음역 악기의 독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아쟁은 늦어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궁중에서 관현악에 사용되었던 악기였다. 그러나 20세기 이후로 창극이 발전하고 여기에 기악 합주가 필요해지면서 저음역 악기였던 아쟁이 주목되었다. 그러나 당시 아쟁은 여타 민간 악기와 조화를 이루기에는 구조적 · 기교적 · 미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박성옥(19081983)과 정철호(1923) 등은 아쟁의 크기를 작게 하고 또 활대의 재질도 말총으로 바꾸고 연주 기교도 개발하면서 민간의 여러 악기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했다.
소아쟁으로 산조가 연주된 것은 1948년 여성국악동호회의 창단 때였다. 1950년대 이후로 한일섭(韓一燮: 19291973), 정철호, 장월중선(張月中仙: 19251998) 등은 보다 발전된 아쟁산조를 제시했다. 한일섭의 음악은 윤윤석(尹允錫: 19392006), 박종선(朴種善: 19412024) 그리고 박대성(朴大成: 1938~)에게, 정철호의 산조는 서용석(徐龍錫, 19402013)에게, 장월중선의 음악은 김일구(金一球, 1940)로 전승되었다.
아쟁산조는 대체로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악장으로 구성되며 매우 빠른 악장은 포함되지 않는다. 유파에 따라 진양 악장 앞에 다스름을 두는 경우도 있고, 계면조(界面調)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청의 이동이 활발하지 않고, 여타 산조에 나타나는 2도 관계의 대립적 청[기본청과 보조청]이 활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쟁산조는 저음역으로 지속음을 낼 수 있는 악기가 독주 악기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