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의 소리 정보를 시각화 하는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음성에 관한 정보를 시각화한 것이 문자라면, 음악에 관한 정보를 시각화 한 것이 악보이다. 음악에 관한 정보 중 음의 높이에 관한 정보가 가장 먼저 기록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그 다음이 음의 길이에 관한 정보가 기록되었다. 그 후에 음악의 강약에 관한 정보, 연주 방법에 관한 정보, 표현에 관한 정보 등이 기록되었고, 음색에 관한 정보는 직접적으로 기록되지 못하고, 연주법 등의 방법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시대와 지리 그리고 문화적 배경 등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왔다.
음악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이 악보를 통하여 재생(再生), 재창작(再創作)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즉 악보를 통하여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시스템(system)이 필요하게 되며, 그 시스템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을 때 악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된다. 오늘날 불가(佛歌)에서 사용했던 각필기보법과 판소리 학습자들이 각종 성음과 타루 등의 표현을 자신만의 부호로 기록하는 방법은 보편적인 수준으로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소통과 해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악보의 발달은 15세기에 시작되어 16~19세기에 다양한 악보[기보법]들이 사용되었으며, 20세기에 현재의 정간 기보법으로 정착되었다.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유입된 악보가 있었고, 육보(肉譜)가 있었다고 하지만 실물이 존재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실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랜 악보는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수록된 『세종실록악보』인데, 음 높이는 한자로, 음의 길이는 정간(井間)으로 기록하였다. 정간은 세종대왕의 창안(創案)이니 그 이전의 악보는 음높이만 기록했다고 보인다. 또 육보는 구음(口音)이라는 수단으로 전승되었다고 보이므로 실물 악보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다.
정간은 글쓰는 방법에서 창안된 것이다. 글쓰기 하기 전에 한지를 가로와 세로로 일정하게 접어서 네모난 선을 만들고, 그 안에 글을 써 넣었던 방법을 세종대왕이 정간 기보법으로 이용한 것이다. 네모난 선에 글을 써 넣는 방법은 여주 신륵사 대장각기비(驪州神勒寺大藏閣記碑)에서 확인된다.
악보를 기록하는 방법에서 바탕이 되는 것을 보표(譜表)라 한다. 즉 보표는 악보의 기본 형태가 되는 것이 그 보표에 여러 문자, 부호,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음의 높이, 길이 등을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보표가 악보의 기본 바탕이 되므로, 악보의 명칭은 보표명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정간보와 오선보(五線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의 정간은 음의 길이를 나타내는 보표이고, 그 곳에 음높이를 나타내는 율자[黃, 太, 仲, 林, 南 등]를 적어 넣은 방법을 사용한다. 서양의 오선은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보표이고, 그 곳에 음길이를 표시하는 음표를 적는다.
음악에는 강약의 반복이 있는데, 반복의 사이클은 음악에 따라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다. 서양의 공통관습시대 음악은 3박 혹은 4박 단위로 강박이 반복되며, 강박의 앞에 세로줄로 표시하고, 강박이 변화될 때는 부호로 표시한다. 조선시대에 만든 세조실록악보는 3박, 2박, 3박, 3박, 2박, 3박 단위로 강박이 반복되는 것을 굵은 줄[大綱]로 표시하고 이를 6개의 대강[六大綱]이라 불렀다.
느린 음악에서는 강약의 반복이 쉽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강박을 기록할 필요가 줄어든다. 우리나라의 17세기 후반에 편찬된 『신증금보(新證琴譜)』부터 19세기 초에 편찬된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까지 민간에서 편찬된 악보의 대부분이 정간과 대강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악보에서 연주법을 기록하는 것은 합자기보법(合字記譜法)이 대표적이다. 거문고의 연주 방법을 지법[손가락 쓰는 법], 현법[줄 사용법], 괘법[괘 사용법], 탄법[줄 퉁기는 법] 4가지로 구분하여 그 방법을 약자 또는 부호로 만들고, 다시 하나의 글자 모양으로 조합하여 기록하는 악보이다. 이 방법은 16~19세기를 거치면서 육보에게 그 기능을 넘겨주고, 육보의 보조적인 부호 몇 가지만 남긴채 사라졌다. 이 방법만을 따로 구분하여 주법기보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음악의 빠르기를 기록하는 방법은 20세기 서양음악의 악보가 유입된 이후에 1분 당 빠르기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1912년 가네스네는 「여민락(與民樂)」의 빠르기를 아다지오(Adagio)로, 백우용(白禹鏞)은 여민락의 빠르기를 1분 36박으로 기록하였다.
정간악보에서 상대적인 빠르기를 기록하기 위해 다른 보표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방산한씨금보(芳山韓氏琴譜)』의 가곡 악보를 보면 상대적으로 느린 초수대엽, 이수대엽 등은 1행 32정간보표를 사용하고 1박을 2정간에 기보하고, 중간 빠르기에 해당하는 평롱(平弄), 우락(羽樂) 등은 1행 16정간보표를 사용하고 1박을 1정간에 기보하고, 더 빠른 편락(編樂), 우편(羽編), 편수대엽(編數大葉) 등은 1행 10박 보표를 사용하고 1박을 1정간에 기보하였다. 이 방법은 단편적인 예이며, 보편적으로 통용된 것은 아니다.
19세기 『삼죽금보(三竹琴譜)』에서 정간보표에 기보하는 방법에 정간의 실선에 점을 찍어 장단[리듬]의 구분을 시도하는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1939년 이왕직아악부 정간보에서 1장단을 1행의 단위로 하는 보표가 사용되었고, 악기의 연주법, 시김새 등을 기록하려는 1차 시도가 이 시기에 함께 진행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의 교재로 사용되었던 『악리(樂理) · 악제(樂制)』는 정간보에 사용되는 일반부호 · 악기부호[현금 · 가야금 · 양금 · 필률 · 대금 · 생황 · 성악 · 타악기]가 소개되어 있어 정확하고 세밀한 악보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스템은 현재의 정간악보에서도 대부분이 적용되고 있다.
정간보표 기보를 위한 2차 시도는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의 설립이 계기가 되었다. 1955년에 첫 소생[학생]을 모집하고 교육하는데, 악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국립국악원의 장악과장 겸 국악사양성소의 교무주임이었던 김기수(金琪洙)가 주도하여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정간악보가 정리되었다. 이 악보는 1장단을 1행[1각]에 기록하고, 장구점의 강세에 따라 1행 20정간은 6정간+4정간+4정간+6정간, 1행 16정간은 11정간+5정간, 1행 12정간은 3행+3행+3행+3행, 1행 10정간은 3정간+2정간+2정간+3정간 또는 7정간+3정간을 구분하는 대강(大綱)을 그어 주1 표시하였다.
1행 8정간, 1행 6정간, 1행 5정간, 1행 4정간악보인 경우에는 대강 구분을 하지 않았다. 또 각 악기별 음역을 반영하여 옥타브를 달리하고 중간 음역, 위로 2옥타브, 아래로 2옥타브 율자를 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악기별 연주법[현악기의 슬기둥, 관악기의 나니레 등], 운지법, 장식음 부호 등을 추가하여 정확하고 세밀한 악보를 만들었다. 이때 정리된 정간보표 기보 방법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서양음악이 유입된 후, 국악을 오선악보로 채보하는 작업이 서양음악 전공자들에 의해 악기의 음역, 기준음 주2의 음고, 음악의 빠르기, 박자 표기 등 여러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작하였다. 1928년에 이왕직아악부에서 백우용 주도로 시작된 채보 작업은 1936년에 이왕직아악부의 젋은 악사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높은 음역의 악기는 높은음자리표를, 낮은 음역의 악기는 낮은음자리표를 사용하였고, 황종의 음고를 C로 하였으며, 주3를 사용하지 않았다.
김인식(金仁湜)은 풍류방에서 연주되던 영산회상(靈山會相) 「여민락」을, 이상준(李尙俊)은 타령을 오선악보로 채보하였고, 황종의 음고를 D로 하였으며, 조표를 사용하지 않았다. 조표와 이음줄의 사용은 이상준의 가곡 「우조초수대엽(羽調初數大葉)」[우조 첫치] 채보에서 처음 보이는데, 조표는 황(黃)음을 sol 또는 la로 읽기 위한 것이며, 이음줄은 숨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박자표를 4/4, 2/2 등으로 표기하여 장구 장단의 강세를 바르게 기록하지 못하였던 것은 느린 음악에서 강세를 느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상준은 시조의 황종을 E로 기보하고, 박자표는 5/4, 6/4 등을 사용하였다. 이상준은 민요 채보 과정에서 오음음계 음악을 sol-la-do-re-mi로 기록하기 위해 조표 사용의 시행착오를 극복해 나갔다.
계정식(桂貞植)은 박사 논문 연구를 위해 궁중음악, 풍류방음악, 민요를 채보하였는데, 황종의 음고를 E♭으로, 3/4 또는 6/8 등의 박자표를 사용하였다. 초기의 채보자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극복한 이후의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향악계 황종은 E♭으로, 당악과 아악계 황종은 C로 구분하여 기보하고, 박자표는 장단과 강세를 기준으로 기보하고 있다. 20세기 이후의 창작 국악은 모두 오선악보를 사용하며 서양음악 기보법을 수용하고 있다.
음악은 전승되는 과정에서 변화를 겪게 되며, 구전으로 전승되는 음악일수록 그 변화의 정도는 클 수 있다. 악보는 편찬 당시의 음악을 담고 있으므로, 현재의 악보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과거의 음악을 기록한 악보를 ‘고악보(古樂譜)’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전래되는 악보를 처음 소개한 것은 송석하(宋錫夏)의 논문 「현존조선악보(現存朝鮮樂譜)」[1943]이다. 이 글에는 당시에 전하고 있던 15종의 옛 악보에 대한 서지학적의 기초 내용이 담겨 있으며, 그 시기의 하한선은 1893년에 편찬된 『휘금가곡보(徽琴歌曲譜)』였다. 성경린(成慶麟)의 『조선음악독본(朝鮮音樂讀本)』[1947]의 제6과 악보에서 세조실록악보를 소개하면서 고악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고악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장사훈(張師勛)의 「고악보해제(古樂譜解題)」[1966]로 이 글에서 23종의 고악보를 소개하였는데, 시기의 하한선은 1932년에 간행된 『성학십도(聖學十圖)』[^4]였다. 간행 연대 기준으로는 고악보라 보기 어렵지만 양금의 한자 육보로 기록된 점을 들고 있어, 1966년 당시에 사용되지 않는 기보법이 고악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즉 고악보의 선정 기준이 ‘1930년대 이전이라는 편찬[간행] 연대’와 ‘사용하지 않는 기보법’이었다. 1973년부터 이동복(李東福)이 다수의 고악보를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할 때도 이 기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88년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25집에 「아악부 대금보」 등이 포함되면서 편찬 연대와 기보법의 기준이 변화되었다. 이 악보는 주5 무렵에 편찬되었고, 정간보표에 율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의 정간악보와 다른 점이 있다.
「여민락만(與民樂慢)」[「경록무강지곡」] 등 당악계 악곡은 정간보표 없이 율자만 기록하였고, 정간보표를 사용한 「수제천(壽齊天)」은 정간의 실선에 율자를 기록하기도 하고, 「여민락」[「승평만세지곡」]은 장식음과 연주 부호 등이 전혀 없이 근간이 되는 선율만 기록하였다. 또 「세영산(細靈山)」 · 「도드리」 · 「가곡」 등 악곡은 1박을 2정간에 기록하였다. 고악보의 연대 하한선이 조금 낮아졌고, 현재와 같은 기보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기보 방식에서 다르다는 기준이 적용되었다.
2011년에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42집에 「이왕직아악부오선악보남창(가곡)」이 포함되었는데, 이 악보는 1939년에 편찬된 오선보표를 사용하였지만 현재의 오선악보와 다른 점이 있다. 박자표를 기록하지 않았고, 낮은음자리표에 황종을 C로 기보하고 프렛(♭)을 주6 붙였다. 「청석령(靑石嶺)」이 우조와 주7 채보되어 있다. 현재와 같은 오선보표를 사용하였더라도 기보의 기준이 다르고 현재 전하지 않는 악곡을 수록하고 있다는 기준이 적용되었다. 이와 같이 고악보의 기준에서 편찬[간행] 연대의 하한선 · 기보 방법 등은 계속 변화될 주8
한국의 고악보에 사용된 기보법은 기보법 항을 참고하면 된다.
인쇄 사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학자들은 고악보를 필사 또는 등간(謄刊)하여 소장하고 연구에 사용하였다. 원본을 영인하는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고악보가 영인되기 시작하였는데, 『양금신보(梁琴新譜)』가 1952년에 영인 출판되었고,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가 1954년에 영인 출판되었다.
1970년대에 한국국악학회와 서울대학교 국악학연구회가 공동으로 『대악후보(大樂後譜)』, 『속악원보(俗樂源譜)』, 『금보(琴譜)』[『금합자보(琴合字譜)』], 『유예지(遊藝志)』, 『현금동문류기(玄琴東文類記)』, 『현금오음통론(玄琴五音統論)』 등을 영인 출판하였다. 이 사업은 1979년에 국립국악원에서 이동복의 주도로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체계적으로 영인본이 출판되게 되었다.
2024년 현재까지 발굴되어 학계에 소개된 100여 종의 고악보가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시리즈로 영인 출판되어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2021년까지 『한국음악학자료총서』에서 영인된 고악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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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악보의 해독 연구는 이혜구의 「양금신보 4조」와 장사훈의 「보허자 논고」로 시작되었다. 두 학자의 연구는 다양한 고악보에서 이루어졌고, 연구의 성과는 한국음악사를 서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악보는 과거의 기보 방법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현재와 동일한 방법으로 해독이 불가능하기도 한다. 악보의 편찬[간행] 연대가 오래될수록 해독은 더욱 어렵기 때문에,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음고의 해석과 주9의 해석이다.
음고 문제는 황종과 궁(宮)의 음고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예를 들면 『세종실록』과 『악학궤범』의 황종을 C로 해석하는 견해와 E♭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또한 『시용향악보』의 궁(宮)을 황종으로 해석하는 견해와 임종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시가 문제는 1정간을 1박으로 해석하는 견해와 1정간의 시가를 다르게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전자는 현재 정간보표 사용 방법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의 주장이고, 후자는 조나단 컨디트(Condit, J.), 홍정수, 전인평, 문숙희 등 학자들의 주장이다.
문숙희는 『시용향악보』의 5정간과 3정간의 시가를 동일한 1박으로 해석하고 있다. 5정간[3정간+2정간]을♩♪ 리듬으로 해석하고, 3정간[2정간+1정간]을♩♪리듬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방법은 『시용향악보』의 6대강 구조[3정간+2정간+3정간+3정간+2정간+3정간]가 현재 전하는 가곡과 동해안별신굿의 청보장단에 남아 있기 때문에 학술적인 설득력이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