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경상도관찰사, 판한성부사, 개성유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0년(공양왕 2) 국왕이 천도하려고 하자 이는 술사(術士)들의 망령된 행위라고 반대하여 중지시켰다.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이라는 새 왕조를 세우려 하자 이에 반대하고, 건국 후에는 정치 참여를 거부하니, 이로써 반대파의 사람들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강제로 구도(舊都)의 관리를 맡기니 유후(留後)의 이름은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그 뒤 태조가 형조전서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태종이 즉위하여 몸소 찾아가 간청하여 벼슬에 나아가니, 1401년(태종 1)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건너가서 『대학연의(大學衍義)』·『통감집람(通鑑集覽)』 등의 서책을 구해왔다.
그 뒤 1404년 경상도도관찰사를 지냈다. 1407년에는 사헌부대사헌이 되어 태종의 밀명을 받고, 외척으로서 횡포를 부리던 민무구(閔無咎) 형제를 탄핵하여 외방으로 유배시켰다. 이어서 판한성부사·개성유후를 역임하고 병사하였다. 위인이 근면성실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였다. 시호는 경질(景質)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종실록(太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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