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만남과 헤어짐으로 세상살이를 하게 되고, 더욱이 같은 사회에서 같은 목적이나 취지를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 어울리기 마련이다. 이 때에 벗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벗을 삼다’, ‘벗하다’, ‘벗을 트다’는 말들은 사람들의 만남에서 서로 허물없이 친하게 사귀고, 그럼으로써 서로 서먹서먹한 높임말을 쓰지 않으며 터놓고 정답게 지내는 사이를 일컫는다.
벗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로는 친구 · 동무 · 우인(友人) · 붕우(朋友) · 붕지 · 붕집(朋執) · 동료 · 동지 따위가 있다. 이 가운데에서 동무라는 말은 어려서부터 친근하게 지내온 벗을 다정하게 이르는 말의 하나였다.
그러나, 광복 후 조국의 분단과 더불어, 북한에서 이른바 공산주의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라는 뜻으로 나이와 관계없이 사용하였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쓰기를 꺼리는 말이 되기도 하였다.
벗을 옛말로는 ‘벋’으로 표기하였다. 그 어원은 ‘더불다’[與]의 təp이 음운도치현상을 일으켜서 pət이 되었다고 본다.
한자인 ‘友’는 왼손을 나타내는 ‘0xFA6F’자와 오른손을 나타내는 ‘又’자를 어우른 글자로, 손을 마주잡고 서로 도우며 더불어 친하게 지낸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벗을 다정하게 이를 때에는 벗님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벗의 관계가 이루어진 것을 사람들의 모듬살이와 더불어서였다고 본다면, 벗이라는 말의 역사도 우리 겨레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벗의 관계를 밝힌 최초의 기록으로 대표적인 것은 ≪삼국사기≫이다. 여기에서 6세기 후반기의 원화(源花)와 화랑(花郎) 등 청소년의 모듬살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화랑은 그 수양방식으로 서로 도의를 닦는 일[相磨以道義], 서로 시와 노래를 즐기는 일[相悅以歌樂], 명산과 대천을 찾아 즐기는 일[遊娛山川 無遠不至]을 들었다.
이 모듬살이의 ‘서로’의 관계는 바로 벗의 관계다. 여기에 새로운 유 · 불의 정신이 가미되어 7세기에 들어서는 원광(圓光)의 이른바 ‘세속오계’가 화랑들의 이념이 되었다. 원광이 화랑인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에게 가르침으로 내렸다는 ‘세속오계’에도 벗의 관계가 들어 있다.
‘믿음으로써 벗을 사귀어야 한다[交友以信].’가 곧 그것이다. 이것은 유교의 덕목으로, 삼강오륜의 하나인 ‘벗의 도리는 믿음에 있다[朋友有信].’와도 같은 뜻이다. 이후에도 이 믿음을 벗을 사귀는 첫째 요건으로 여겼다.
정철(鄭澈)의 “남으로 생긴 중에 벗같이 유신하랴/나의 왼일을 다 이르려 하노매라/이 몸이 벗님 곧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까”나, 박인로(朴仁老)의 “벗을 사귈진댄 유신케 사귀리라/신(信)없이 사귀며 공경없이 지낼소냐/일생에 구이경지(久而敬之)를 시종 없게 하오리라”나, 낭원군(朗原君)의 “남으로써 친한 사람 벗이라 일렀으니/유신 곧 아니하면 사귈 줄이 있을소냐/우리는 어진 벗 알아서 책선(責善)을 받아보리라” 등의 시조들이 모두 벗과의 믿음을 강조하였다.
벗을 사귀는 둘째 요건은 서로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박인로의 시조 종장도 이를 말함이다. 곧 벗이라면 ‘한평생을 두고 길이길이 공경함을 한결같이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이(李珥)는 ≪격몽요결 擊蒙要訣≫의 접인장(接人章)에서 무릇 사람을 대하는 데는 마땅히 화평하고 공경하기를 힘써야 한다고 했으며, 나이가 자기보다 20년이 위일 때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섬기고, 10년이 위일 때는 형으로 섬기며, 5년이 많아도 공경해서 대접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흔히 벗을 사귀어 친근해지면 공경하는 마음을 잃기 쉽다. 공경하는 마음을 잃게 되면 끝내 틈이 생겨 먼 사이가 되고 만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안평중(晏平仲)이야말로 사람과 사귀는 것을 잘 한다. 그 사람은 오래 사귈수록 더욱 공경하는구나”도 친한 가운데에 예의가 있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불교의 ≪선생자경 善生子經≫은 벗을 공경으로 대하는 다섯 가지 일들을 구체적으로 들어 말하였다. 곧, “바른 마음으로 공경하며, 그 마음을 한하지 않으며, 딴마음[他情]을 먹지 않으며, 때때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은혜의 두려움을 잊지 않음”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벗을 사귐에는 서로가 책선을 다해야 한다. 위의 낭원군 시조에도 “우리는 어진 벗 알아서 책선을 받아보리라”고 하였다. 책선이란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하고 충고하는 일이다. ≪맹자≫에도 “책선은 벗의 도리다[責善朋友之道也].” 했다.
화랑도의 수양방식에도 ‘서로 도의를 닦는 것’을 첫째로 들었다. 그 실증적인 보기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을 들 수 있다.
이는 1934년 경주의 북녘 변두리인 경상북도 월성군 견곡면(見谷面) 금장리(金丈里)의 언덕에서 발견된 자연석으로 현재는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돌은 두 화랑도가 3년 안에 ≪시전 詩傳≫ · ≪상서 尙書≫ · ≪예기≫를 습득할 것을 맹세하여 그 뜻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일종의 금석문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새긴 해인 임신년은 732년(성덕왕 31)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사람의 사이뿐 아니라 여러 벗들이 모여 서로 시문을 닦은 보기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말기의 죽림고회(竹林高會)나 조선시대 말기의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가 곧 그것이다.
죽림고회는 이인로(李仁老) · 임춘(林椿)을 중심으로 오세재(吳世才) · 조통(趙通) · 황보 항(皇甫沆) · 함순(咸淳) · 이담지(李湛之) 등 7인의 모임으로, 이들을 강좌칠현(江左七賢) 또는 해좌칠현(海左七賢)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들보다 나이가 어린 이규보(李奎報)도 이들의 모임에 가끔 참석하였다. 이들은 자주 모여 세사(世事)가 아닌 자연과 시와 술로써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시문을 닦았다.
이들의 모임에서 우리 문학사상 처음으로 시화(詩話)와 가전체(假傳體) 문학이 등장하였다. 송석원시사는 주로 중인 · 서리 출신인 위항시인(委巷詩人)들의 모임이었다.
천수경(千壽慶)이 서울의 인왕산 아래 옥인동(玉仁洞) 일대에 정원을 만들어 김정희(金正喜)가 쓴 송석원의 편액을 걸고, 수많은 불우시인들과 더불어 시와 술로써 소요자적하였다.
여기에 드나들던 시인들을 송석원시사 시인이라 부르는데, 장혼(張混) · 조수삼(趙秀三) · 차좌일(車佐一) · 김낙서(金洛瑞) · 왕태(王太) · 박윤묵(朴允默) · 최북(崔北) · 엄의길(嚴義吉) · 엄한빈(嚴漢賓) · 엄한명(嚴漢明) · 엄계승(嚴啓昇) · 엄계흥(嚴啓興) · 엄계응(嚴啓鷹) · 지도성(池道成) · 지덕구(池德龜) · 지한상(池翰祥) · 박영석(朴永錫) · 서경창(徐慶昌) · 임득명(林得明) · 노윤적(盧允迪) · 이경연(李景淵) 등을 들 수 있다.
고종 때의 대원군도 때로 이곳에 나와 큰뜻을 길렀다. 신라 · 고려 · 조선시대에 벗들이 모여 도의와 시문을 닦으며 서로 책선한 보기를 들었다.
≪효경≫에도 “벼슬하는 남자에게 불선을 간해주는 벗이 있으면 그 몸은 세간에서 호평을 받는다[士有爭友, 則身不離於令名].”고 하였다.
불교의 ≪육방예경 六方禮經≫에는 “죄악을 짓는 벗을 보면 으슥한 곳으로 혼자 찾아가 간해 깨우치고 꾸짖어 그치게 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 모두가 벗은 책선하고 충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책선과 충고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행실이 바르고 착해야 한다.
신흠(申欽)이 그의 ≪상촌집 象村集≫에서 말한 “만인의 바다에 놀면서 제일류(第一流)와 더불어 벗을 하지 못하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자기가 제일인이 되었는지를 돌아본 연후에야 제일류들이 이를 수 있는 것이니, 제일류와 더불어 벗을 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먼저 자기로 하여금 제일인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라는 구절도 이를 말함이다. ‘숯이 검정 나무라는 격’이 되어서는 책선이고 충고고 먹혀들어갈 까닭이 없다.
끝으로 벗을 사귐에는 정의(情誼)가 도타워야 한다. “벗이면 다 벗이랴 무정이면 벗 아니라”의 시구나 ‘벗따라 강남 간다[追友江南].’는 속담도 벗 사이의 정의를 말한 것이다. 벗과 떨어져 있으면 자주 안부를 묻고, 아름다운 술을 보아도 벗을 생각하는 게 옛사람들의 벗에 대한 정의였다.
다음과 같은 무명씨의 시조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이오/마음이 천리오면 지척도 천리로다/우리는 각재천리(各在千里)오나 지척인가 하노라”는 천리를 떨어져 있어도 벗을 생각하는 마음이 서로 통하여 있으면 가까이 있는 것과 같다고 노래하였다.
“대초볼 붉은 가지 에후루혀(휘어잡아) 가려 따고/올밤 벙근 가지 휘두드려 가려주어/벗 모와 초당에 들어가니 술이 풍풍(豐豐) 있어라”나 “득우(得友)면 난득주(難得酒)요 득주(得酒)면 난득우(難得友)라/금석하석(今夕何夕)고 유주유우(有酒有友)로다/두어라 삼난(三難)이 갖았으니 아니 놀고 어이 하리”는 벗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 정의를 노래했다.
위에서 말한 믿음 · 공경 · 책선 · 정의가 벗을 사귀는 데 있어서의 요건이 된다. ≪논어≫에는 사귀는 데 있어 유익한 벗과 해가 되는 벗을 들어서 말하기도 하였다. 익자삼우(益者三友)와 손자삼우(損者三友)가 곧 그것이다.
유익한 세 가지 벗이란 정직한 사람[友直] · 성실한 사람[友諒] · 견문이 많은 사람[友多聞]을 들었고, 해가 되는 세 가지 벗으로는 편벽된 사람[友便侫] · 남의 비위만을 맞추어 주는 사람[友善柔] · 말만 잘 둘러대고 실속이 없는 사람[友便羨]을 들었다.
불경에서는 선우(善友)와 악우(惡友)을 구분하여 말하고 있다. 선우란 선지식(善知識: Kalyana-mitta)과 같은 말로 좋은 벗을 일컬음이다.
좋은 벗은 “천성이 우둔하지 않고 총명하며 슬기로워서 악견(惡見)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瑜伽師地論].”라 하였다.
이러한 벗을 사귀면 “첫째는 고락을 같이하고, 둘째는 위하여 이(利)로써 거두어주고, 셋째는 위하여 과거의 행위[(本業)]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넷째는 위하여 인자한 마음 가여이 여겨[(愍傷)]준다[善生子經].”고 하였다.
악우란 악지식(惡知識:Papa-mitta)과도 같은 말로 악한 벗을 일컬음이다. 악한 벗이란 “첫째는 속에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도 겉으로는 억지로 벗인 체 하는 사람, 둘째는 그 앞에서는 좋게 말하지만 뒤에서는 나쁘게 말하는 사람, 셋째는 다급한 일이 있을 때 그 앞에서는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체 하지만 뒤에서는 기뻐하는 사람, 넷째는 겉으로 친한 체 하지만 속으로는 해칠 음모를 일으키는 사람[六方禮經].”이라 하였다.
‘속 각각 말 각각’이나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속담을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있어 택교(擇交)라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벗은 가리어서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본행경 佛本行經≫에 있는 다음 이야기도 벗은 가리어 사귀어야 할 것을 말해 준다.
어느 날 세존(世尊)이 난타(難陀)와 함께 길을 가다가 향을 파는 가게 앞에서 멈추어 “저 향이 든 주머니를 집어 한 시각만 잡고 있다가 도로 놓고, 네 손의 냄새를 맡아보아라.”고 하였다. 이에 “손의 향기가 끝없이 미묘하다.”는 난타의 말에, 세존은 좋은 벗을 사귀면 그와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또 하루는 생선가게 앞에 이른 세존이 난타에게 “저 썩은 생선 위에 펴놓은 갈대를 한 움큼 쥐고 잠시 있다가 땅에 놓아라. 그리고 네 손의 냄새를 맡아보아라. 어떤 냄새가 나느냐?”고 물었다. “오직 부정한 비린내가 날 뿐입니다.”고 난타가 대답하자, 세존은 다시 악한 벗을 사귀면 악업과 악명이 그 비린내처럼 떨치리라고 하였다.
이러한 택교에 대하여 이황(李滉)의 생각은 달랐다. ≪퇴계선생언행록≫에 있는 그의 제자 이덕홍(李德弘)과의 문답을 보면 이렇다.
“덕홍이 묻기를, ‘공자의 말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는 일체 사귀지 않아야 하겠습니까?’ 하였다.
선생이 ‘보통 사람의 정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벗하기를 좋아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는 벗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공자는 이런 사람을 위해서 한 말이요, 일체 벗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 말은 아니다. 만일 한결같이 착한 사람만 가려서 벗하고자 한다면 이 또한 편벽된 일이다.’ 하였다.
다시 덕홍이 묻기를, ‘그렇다면 악한 사람과도 더불어 사귀다가 휩쓸려 그 속에 빠져들어가게 되면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선생이 ‘착하면 따르고 악하면 고칠 것이니, 착함과 악함이 모두 다 내 스승이다. 만일 악에 휩쓸려 빠져들어가기만 한다면 학문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하였다.”
벗을 가려서 사귀고 또 걸핏하면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하여 절교하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이는 ≪격몽요결≫ 접인장에서 남이 나를 헐뜯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 때는 반드시 자기 몸을 돌이켜 보아서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만일 내 몸에 실제로 남에게 헐뜯음을 받을만한 행동이 있었을 때는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고 마음 속으로 자기 몸을 꾸짖어서 그 허물을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만일 나의 과실이 몹시 작은 일인데도 거기에 더 큰 과오가 있는 듯이 보태서 말을 했으면, 그 사람의 말이 아무리 지나쳤을지라도 나에게는 실상 비방받을만한 까닭이 있는 터이니, 마땅히 전에 저지른 허물을 깎아 없애고 터럭만큼도 머물러두지 말아야 한다.
또, 만일 나에게는 실상 아무런 허물도 없는데 빈말을 거짓으로 꾸며 만든 것이라면 이것은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내가 저 망령된 사람과 무엇하러 그 허실을 계교할까보냐.
더욱이 저 사람이 나를 빈말로 비방하는 것은 마치 바람이 귓가로 지나가고 구름이 하늘로 지나가는 것과 같거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하고 참아야 한다.
대체로 이와 같이 해서 저 사람에게서 비방의 소리가 왔을 때에는 나에게 그런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칠 것이요, 그런 허물이 없으면 더욱 힘써 허물이 없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니, 이런 것들은 모두 나에게 유익한 일이 되는 것이다.
만일 자기에게 허물이 있다고 들었을 때 그것을 스스로 변명하여 시끄럽게 굴어 기어이 자기 몸에 아무런 허물이 없다고 하려 든다면 그 허물은 더욱 무거워지고 남들에게 비방을 듣는 것도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다.”
즉, 벗을 가리거나 벗을 탓하기보다 언제나 자기수양이 앞서야 할 것을 말하였다.
벗이 딱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에는 더욱 그를 가까이 하고 도와야 하는 것이 우정이다. 그를 버리거나 그의 앞에서 교만하게 구는 것은 벗의 도리가 아니다.
두보(杜甫)의 시 <빈교행 貧交行>은 이를 말하여 준다. 빈교행이란 궁핍한 생활 속의 교우(交友)에 관한 노래라는 뜻인데 시는 다음과 같다.
“손바닥을 뒤집어 구름을 만들고 다시 되엎어서는 비를 만드네. 이렇듯 어지럽고 경박한 무리를 어찌 다 셀 수 있으랴. 그대는 옛날 관중(管仲) · 포숙아(鮑叔牙)의 가난하던 때의 사귐을 모르는가. 벗 사귐의 도를 요즘 사람들은 흙덩이를 버리듯 거들떠보지를 않네[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鮑貧時交 此道今人棄如土].”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는 ≪사기≫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온다. 관중은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 때의 명재상이다. 젊었을 때에 집이 가난하여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언제나 돈이 벌리면 많이 차지하였다. 그러나 포숙아는 이를 알고도 관중을 탓하지 않았다.
뒷날 정치적인 입장이 달랐으나 이들의 정의에는 변함이 없었고, 때로 관중은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옛날부터 두 사람의 사귐은 이상적인 것으로 전해온다.
≪공과격 功過格≫은 벗 사이에 공이 되는 일과 허물이 되는 일을 다음과 같이 들어 말하였다.
공이 되는 일은, ① 어진 벗을 친근히 하면 하루에 일공이요, ② 음란한 벗이 청하여도 놀이하는 데 좇지 아니하면 일공이요, ③ 벗의 허물을 보고 충성된 말로 고하고 착한 일로 인도하면 십공이요, ④ 죽은 벗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면 삼십공이요, ⑤ 빈천하였을 때의 벗을 잊어버리지 아니하면 삼십공이요, ⑥ 벗이 그 아내나 아들이 부탁한 것을 저버리지 아니하면 오십공이라 하였다.
허물이 되는 일은, ① 벗이 그 아내와 아들이 부탁한 것을 저버리면 오십과요, ② 죽은 벗과 비천하였을 때의 벗을 저버리면 오십과요, ③ 한 오랜 벗을 가벼이 끊어버리면 이십과요, ④ 음란한 벗을 따라 놀고 희롱하면 삼과요, ⑤ 한 구차한 벗을 싫어하면 삼과요, ⑥ 벗과 실없는 말로 시시덕거리며 부모 처자를 들먹이면 삼과라 하였다.
벗을 사귈 때의 실천항목으로 삼을 만하다.
이덕무(李德懋)의 ≪사소절 士小節≫ 중 ‘서로 사귀는 일[交接]’에서 벗에 관한 조항들을 들어본다.
① 뜻이 같은 사람이 만일 성의로써 먼저 와서 사귐을 청하거든 즉시 가서 사례하라. 문벌이나 재주가 비록 나만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만한 마음을 내어 사례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
② 벼슬로 서로 유혹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권세와 이익으로 서로 의지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장기 바둑이나 놓고 술이나 마시고 해학하며 떠들썩하게 웃는 사람은 벗이 아니요, 시문 · 서화 · 기예(技藝)로 서로 잘한다고 허여하는 사람은 벗이 아니다.
③ 겸손하고 공손하며 아담하고 조심하며 진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명절(名節)을 서로 부지하고 과실을 서로 경계하며, 담박하여 바라는 바가 없고 죽음에 임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참된 벗이다.
④ 위희(魏禧)는 이렇게 말했다. “벗을 사귀는 자는 이미 안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아서는 안 되고 의심을 버리지 않아서는 안 되고, 조그마한 혐의를 없애버리지 않아서는 안 된다.”.
또 이렇게 말했다. “벗에 대하여 윤리를 손상하고 교화를 무너뜨린 자 외에는 차라리 그를 충분히 책망할지언정 조금이라도 박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그를 박하게 대할 뜻을 가지면 성의가 이미 쇠해져서 비록 바른 말을 한다 하더라도 능히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고, 또한 원망을 초래하기 쉽다.”
⑤ ≪백호통의 白虎通義≫에 적혀 있는 말이다. “벗을 사귀는 도리가 네 가지가 있는데 재물을 통용하는 일은 그 가운데 들지 않는다. 가까우면 그를 바로잡아 주고, 멀면 그를 칭찬해 주며,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를 생각하고, 환란이 있으면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
⑥ 일마다 미봉책을 써서 부딪히는 곳마다 파탄이 생기게 하는 자는 곧 재주없는 소인이다. 그는 새로 알게 되는 사람을 농락하기 때문에 몇 달도 사귀는 벗이 없다.
⑦ 평생 친한 벗은 중간에 혹시 소식이 끊어졌더라도 언제나 염두에 두었다가 서로 만나게 되면 반갑게 해야 하고 서먹서먹하여 무정한 듯 해서는 안 된다.
⑧ 어릴 때 친한 벗이 장성한 뒤나 까닭 없이 서로 소원하게 되는 자가 있으니, 이는 천박한 사람이다. 이들은 빈천할 때 서로 버릴 것임을 반드시 알 수 있다.
⑨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너나들이[爾汝]하여서는 안 된다. 어릴 때 사귄 처지라도 각기 장성한 뒤에는 그대로 아명을 불러서는 안 된다.
⑩ 오늘날의 이른바 벗들은 걸핏하면 서로 욕설을 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다. 아들이니 손자니 하거나 말이니 소니 하며 서로 낮춰부른다. 또한 성명을 파자(破字)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침범하기도 한다. 추하고 패악한 말을 마구 주고받음으로써 인륜 도덕을 전연 무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예사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친밀한 벗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 같은 사람은 비록 날마다 소 · 양 · 돼지를 잡아서 봉양한다 하더라도 집안의 패자(悖子)요, 나라의 난민(亂民)이요, 명교(名敎)의 죄인이다.
⑪ 처음 사귈 때 친애함이 없음은 서로가 떠받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귄 지 오래되어 각기 상대방의 과실을 알고 혹시 규잠(規箴)하면 크게 비위를 거슬려 사귐이 비로소 등진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겸허함을 귀중히 여기고 시종을 삼간다.
⑫ 열 살이 더 많아 노형(老兄)이라 일컫는 이를 볼 때에는 반드시 절을 하는 것이 옳다.
⑬ 남과 처음 사귈 때 비록 마음에 든다 해도 지기(知己)라고 일컬어서는 안 되고, 사귄 지 약간 오래된 사이에는 마음에 조금 거슬린다 해서 갑자기 절교를 논해서도 안 된다.
⑭ 한 가지 일이 마음에 맞지 않는다 해서 일마다 남을 의심한다면 어찌 양우(良友)이며 길사(吉士)이겠는가.
⑮ 험악한 사람의 심리는 남의 우호(友好)를 미리 시기하여 반드시 이간해서 서로 떨어지게 하려 한다. 친지가 상을 당했을 경우 거리가 멀면 위문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고, 거리가 가까우면 직접 가서 조문하라.
좋은 시절이나 명절 때에 벗들이 즐겁게 놀기 위하여 주식대를 추렴하자고 하거든 인색하거나 피하거나 억지로 응낙하거나 하지 말라.
만일 가난해서 제공할 것이 없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구차하게 마련하여 가난을 숨기려고 하지도 말며, 자신이 준비됐다고 해서 준비 못한 사람을 조소하지도 말라.
평소 사랑하고 존경하는 벗의 편지는 찢거나 더럽히거나 휴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삼가 날짜를 적어 깊이 간직했다가 떨어져 있을 때 보고 싶거나 죽은 뒤에 감회가 있거든 수시로 그 편지를 펼쳐 읽어서 마음을 달랠 것이다.
한번 오가고 나서 벗을 책망하는 사람은 그 벗삼는 도리[友道]를 알만하다.
내가 부유하고 학문도 꽤 좋아하는데, 평소 절친한 친구 중에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나에게 빌려 달라고 입을 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어찌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인간이 아니고 다만 인(吝)이라는 한 글자에 묻혀 있을 뿐이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 바람직한 일들을 자세하고도 간곡하게 들어 말하였다.
한글해석 ≪초등인륜독본≫에도 ‘교우(交友:동무 사귀는 도리)’편이 들어 있다. 원문은 한자 사언(四言)에 토를 달고, 그 옆에 한글풀이를 하였다. 여기에서는 한글풀이만을 현행 맞춤법에 맞추어 옮겨보고자 한다.
인생이 세상에 사는데/가이 벗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니/가리어 사귀면/도울 바 유익함이 있고/가리지 않고 사귀면/손상할 바 해됨이 있느니라/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사귀어/허물하거든 꺼리지 말고 고칠지니라/그 덕을 벗함에/팔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니/부하고 귀한 데 팔리지 말고/형이나 아우에게 팔리지 말지니라/그 바른 사람을 벗하면/나 또한 스스로 바르게 되고/그 간사한 사람을 벗하면/나 또한 스스로 간사하여 지느니라/먹에 가까이 하는 자 검고/붉은 데 가까이 하는 자 붉으니라/쑥이 삼 속에서 나매/붙들지 않아도 스스로 곧고/흰 모래가 진땅에 있음에/물들이지 않아도 자연히 검으니라/낯으로 더불어 사귀지 말고/마음을 알고서 사귈지니라/내 몸을 책망치 않는 이는/첨유하는 사람이요/내 과실을 당면하여 책하는 이는/강직한 사람이니라/그 첨유하는 이를 벗하면/이것은 손함이 되는 것이요/그 강직한 이를 벗하면/이것은 유익이 되느니라/사람이 책하는 벗이 없으면/옳지 못한 데 빠지기 쉬우니/발이 백이나 되는 벌레는/죽음에 이르러서도 자빠지지 않고/벗이 많은 사람은/일을 당하야 그릇됨이 없느니라/처음에 가리어 사귀지 않다가/후에 만일 끊으려 할진댄/저 사람이 크게 원망하여/도리어 해가 될 것이니/나에게 유익하고 나에게 손해됨이/오직 나에게 있는 것이니/벗이오 신실치 못하면/정직한 벗은 아니로다/안으로 소흘하고 밖으로 친밀하면/이것은 신실치 못한 까닭이요/행함이 말과 같지 않으면/또한 신실치 못한 까닭이니/만일 군자가 되어서는/또한 행동이 이렇지 않느니라/같은 스승에게 글을 배움에/반드시 더불어 가까이 사랑하고/반드시 서로 법도를 경계하여/혹시 다툼을 일으키지 말지니라/젊은이로 어른을 업신여기지 말고/어른은 어린이를 설만케 않아야/각각 그 도리를 다하여야/혹시나 서로 다툼이 없으리라/만일 서로 사랑치 못하야/사람의 낯으로 짐승의 마음이 되면/저 새나 짐승을 봄에/또한 각각 한가지로 무리하거늘/하물며 사람이 되어/새나 짐승만 같지 못하랴.
4언 68구로 되었는데 모두가 교훈적이고 격언적이다.
다음은 평안북도 박천지방의 민요 <벗노래>를 통해서 노래에 나타난 벗을 살펴보자.
어화 벗님네들이여/이내 말씀 들어보소/혼자 있기 정노하여/문 밖에 잠깐 나아가/사면을 살펴보니/상종할 이 누구든고/행화촌에 가는 사람/오라기는 하건마는/이 사람을 상종하면/흉험지주 되오리라/청루에 노는 소년들/함께 가자 하건마는/이 소년을 상종하면/방탕하기 쉬우니라/장기 바둑 두는 사람/한가한 듯 하건마는/허송세월 맹랑하다/그도 상종 못하리라/다시금 살펴보아도/상종할 이 전혀 없네.
세월 광풍 좋은 때에/삼척단금 옆에 끼고/벌목시를 외우면서/어진 벗을 찾아가니/형가소리 나는 곳에/뉵칠 관동 모두 있어/읍향하고 맞아들여/은근히 하는 말이/심덕으로 사귄 벗은/절절시시 일을 삼아/모진 행실 경계하며/선한 일로 인도하고/아첨하고 교만하면/할 것부터 멀리 하고/듸냥다문 가리여서/토진간담 하올 때에/물결같이 맑은 마음/거울같이 비치워서/수제치평 강습하고/고왕금래 에론하야/환난상구 능히 하니/성분도 중해지고/오래도록 공경하니/위이거동 아름다와/세상에 좋은 벗은/의벗 밖에 다시 없네.
재물로 사귄 벗은/빈하면 절교되고/권세로 사귄 벗은/미약하면 배반하되/의의 친구 사귄 후론/가도록 친밀하여/옳은 도리 점점 알고/어진 이름 돌아오니/세상에 좋은 벗은 의벗 밖에 다시 없네.
술이나 여자와 장기 · 바둑으로 벗을 상종해서는 안 되고, 벌목시(伐木詩) · 형가소리[亨嘉章]로 재물이나 권세가 아닌, 의로운 벗[義友]을 상종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벗에 관한 민담(民譚)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부분은 ① 벗과의 언약은 죽어서도 지켜야 한다. ② 어려운 처지에 있는 벗을 홀대(忽待)하여서는 안 된다. ③ 술로써 사귄 벗은 그때뿐이라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모두 교훈적인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보기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의 경우, 옛날 쌍동이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절친한 두 벗이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 생사를 같이하자고 언약했다. 하루는 둘이 똑같이 병이 들어 그 중 한 벗이 죽고 말았다. 남은 벗은 병이 나아 일어난 뒤 죽은 벗의 집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도중에서 죽었다는 벗을 만나게 되었다.
두 벗은 어느 산골집에 이르러 음식을 맛있게 먹던 중, 살아남은 친구의 볼에 고추장 종지가 붙었다. 죽은 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의 일이었다. 살아남은 친구는 종지를 잡아떼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죽은 벗의 묘 앞이 아닌가.
종지가 붙어 있는 채 집으로 돌아온 그는 밥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기가 바쁘게 종지가 빼앗아 먹어 끝내는 굶주려 죽고 말았다.
둘째의 경우, 옛날 어느 곳에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거지 차림의 사내가 찾아왔는데, 그는 선비의 옛 벗이었다. 선비는 벗이 찾아온 것을 기뻐하며 아내에게 술상을 내오도록 하였다. 하지만 씻은 듯한 알가난이니, 술 살 돈이 어디 있겠는가.
그 아내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팔아서 술을 사오다가 마당의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아내는 엉겹결에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벗은 지극히 감동하여 자신의 본색을 토로하게 된다.
그 벗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뒤 벗은 가난한 선비를 도왔고, 가난한 선비도 결국 과거에 급제하여 잘 살게 되었다.
셋째의 경우, 옛날 어느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때로 돈을 주며 친구를 사귀라고 하였다.
아들은 그 돈으로 주막에 앉아 벗을 사귄다며 술에 고기에 밥을 짓두드려 먹었다. 어느 날 그 아버지가 아들이 사귄, 둘도 없는 벗이라는 이의 집으로 아들을 앞세우고 찾아간다.
아들에게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거적에다 싼 것을 짐지웠다. 아들은 뒤에 세워두고, 문전에 이른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를 불러낸다. 그리고 그 친구인 아들이 살인을 하여 그 시체를 지고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들의 둘도 없다는 친구는 문전에서 거절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또 다른 벗이 있느냐고 물어서 두 집, 세 집을 더 돌아본다. 아들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끝에 가서 그 아버지는 자신이 사귄 벗의 집을 찾아가, 아들의 살인을 말한다. 아버지의 친구는 시체를 진 아들을 문안으로 불러들여 상의를 하자고 한다.
문안으로 들어간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돼지를 내려놓도록 하고 그 친구에게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돼지로는 잔치를 벌인다.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네 친구가 둘도 없이 좋은 친구라더니, 모두가 술벗이었을 따름이다.”
동양의 고전에서 벗에 관련된 구절들이나 속담을 들어보면 〈표〉와 같다.
경구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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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교나 옻과 같이 아주 친밀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교분(膠膝之交 ; 以膠投膝中 誰能別離此) | 古詩 |
∘벗을 사귐에 가난함을 부끄러워 말라. 가난을 부끄러워 하면 우정이 생겨나지 않는다. (結交莫羞貧 羞貧友不成) | 古詩源 |
∘황금도 때가 오면 녹고 흰 실도 세월이 지나면 검어진다. 때로 부귀하고 때로 가난함에 따라 참다운 우정이 나타난다. (黃金銷鑠素絲變 一貴一賤交情見) | 駱賓王 |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해야 한다.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그것을 계기로 자기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 論語 |
∘자기보다도 학문과 경험이 뛰어난 사람을 벗으로 삼는데 힘써야 한다. (無友不如己者) | 論語 |
∘벗에의 충고가 잦으면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朋友數 斯疎矣) | 論語 |
∘벗과 사귐에 잇어 신의를 지키지 않은 일은 없었던가. (與朋友交而不信乎) | 論語 |
∘먼 곳에 살고 있는 찾아오니 즐겁지 않으랴.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論語 |
∘글을 가지고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어진 일(仁)의 향상을 도모한다. (以文會友 以友輔仁) | 論語 |
∘멀리 떨어져 있는 벗이 서로를 생각함. (渭樹江雲) | 杜甫 |
∘착한 것으로 책망하는 것은 벗의 도리다. (責善 朋友之道也) | 孟子 |
∘한 고을의 빼어난 선비(善士)는 동류끼리 모여 한 고을의 선사를 벗으로 한다. 한 나라나 천하의 선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一鄕之善士 斯友一鄕之善士) | 孟子 |
∘벗이란 원래 그 사람의 덕을 벗으로 삼을 일이다. (友也者 友其德也) | 孟子 |
∘먼저 인물을 선택한 다음에 사귄다. (先擇而後交) | 文中子 |
∘서로 비슷한 성품의 벗끼리 서로 돕고 서로 찾는다. (同明相照 同類相求) | 史記 |
∘옛벗은 백발이 성성해도 우정에는 더욱 새로움이 있으며, 길을 가다가 처음 만난 사람과 잠깐 서로 말을 나누었다 하더라도 정이 통하면 옛벗처럼 다정스러움이 있다. (白頭如新 傾蓋如故) | 史記 |
∘벗과 하룻밤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속에 품었던 무한한 불평도 모두 사라진다. (無限心中不平事 一宵淸話又成空) | 三體唐詩 |
∘벗을 충고하여 착한 길로 인도하되 듣지 않으면 그만두고 스스로를 욕되게 말라. (忠告而善道之 不可則止 母自辱焉) | 小學 |
∘벗따라 강남간다. (追友江南) | 俗談 |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일은 벗이라 해서 말하지 말라. 어쩌다가 정의가 멀어지는 날에는 뒤집혀서 큰 시비가 되기도 한다. (莫將心內事 說與故人知 恐或情疎日 翻成大是非) | 旬五志 |
∘자기가 출세하였다고 해서 고향의 옛벗들에게 지난날의 이야기도 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하찮게 생각한다. (無舊言吾鄙之) | 荀子 |
∘그 아이의 성질을 알 수가 없다면, 그 아이의 벗을 보아라. (不知其子 視其友) | 荀子 |
∘가난했을 때 사귄 벗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貧賤之交不可忘) | 十八史略 |
∘서로 사귄 정의가 쇠라도 자를 만큼 강한 두터운 벗 사이의 교분(斷金之交 ; 二人同心其利斷金) | 易經 |
∘남의 정의를 다 받지 말고, 남의 성의를 다하게 않는 것이 사귐을 온전하게 한다. (不盡人之歡 不竭人之忠 以全交也) | 禮記 |
∘잘못 사귄 친구와 어울리다 보면 스승의 가르침을 거역하기에 이른다. (燕朋逆其師) | 禮記 |
∘그대와 술잔을 기울이거니 벗이여 마음 느긋이 가져다오. 세상 인심이란 뒤집히기 파란과 같은 것 (酌酒與君君自寬人情翻覆似波瀾) | 王維 |
∘사내는 반드시 자기의 존재를 알려줄 지기가 있는 법이니, 세상 사람들의 소문 따위를 염려할 것이 없다. (丈夫曾應有知己 世上悠悠安足論) | 張謂 |
∘옛벗을 만나거든 마땅히 의기를 더욱 새롭게 하라. (遇故舊之交 意氣要愈新) | 菜根譚 |
〈표〉 벗 |
“부모는 천만세요 성주(聖主)는 만만세라/화형제(和兄弟) 낙처자(樂妻子)에 붕우유신 할지언정/그밖의 부귀공명은 다 허사인가 하노라.”하는 시조가 있다.
무명씨의 이 시조에서와 같이, 믿음으로써 벗을 사귀는 일이란 군신 · 부자 · 부부 · 형제간의 섬김과 같은 인륜의 커다란 일로 알았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모듬살이이고 보니 옛날이라고 벗 사이에 불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음의 시조는 그러한 불신의 보기를 말하여준다.
“높으나 높은 ○에 날 권하여 올려두고/이보오 벗님네야 흔들지나 말으소서/떨어져 죽기는 섧지 않으나 님 못 볼까 하노라.”
임진왜란 때의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李陽元)이 동서붕당(東西朋黨)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무렵에 부르던 노래이다. 벗의 사귐이 동아리를 지어, 상대방의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한 채 대응한다면 사람살이에 폐단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뭉친 이러한 동아리를 붕당이라 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서는 후한 · 당 · 송 때에 붕당이 발생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선조 때의 동서붕당에 이어 사색당파가 생겼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벗을 사귀는 일도 어려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벗으로 삼기 보다 자연 속에서 벗을 찾기도 했다.
“청산도 내 벗이요 녹수(綠水)도 내 벗이라/청산 녹수간의 풍월(風月)도 내 벗이라/평생의 사미(四美)로 더불어 함께 늙자 하노라.”는 무명씨의 노래가 있다.
사람이 아닌 청산 · 녹수 · 청풍 · 명월로 벗을 삼고 평생을 살고자 하였던 것을 본다. 어지러운 세상사를 잊고자 하는 심경이 노래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 五友歌>도 이러한 심경의 발로이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물과 돌, 솔과 대, 그리고 달의 다섯 가지로 벗을 삼고자 하였다.
무명씨의 다음 시조에서는 거문고와 술, 달과 매화꽃으로 벗을 삼고 있음을 본다. “세사(世事)는 금삼척(琴三尺)이요 생애는 주일배(酒一盃)라/서정 강상월(西亭 江上月)이 두렷이 밝았는데/동각(東閣)에 설중매(雪中梅) 데리고 완월장취(玩月長醉)하리라.”
낚시질로 벗을 삼아 세상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노래도 볼 수 있다. “세사를 내 아더냐, 가리라 위수빈(渭水濱)에/벗이 날 ○다[싫어하다] 산수(山水)조차 날을 ○랴/강호에 일간어부(一竿漁父)되여 대천시(待天時)를 하리라.”
일제시대 때의 이병기(李秉岐)는 난초(蘭草)로 벗을 삼기도 하였다.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외로 돌아앉아 책을 앞에 놓아두고/장장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이렇게 되면 벗이란 사람의 벗뿐 아니라 자연 사물로의 벗도 있게 된다. 사람의 벗은 비슷한 나이로 서로가 친하게 사귀는 사람을 일컫지만 자연 사물의 벗은 세상 일을 초월한 자기 홀로의 경지에서 가까이 즐기는 사물을 일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