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손(女孫)과도 같은 뜻의 말이다. 한자의 붙임으로는 ‘손녀’를 ‘손자의 딸’로, ‘여손’을 ‘딸의 손자’로 생각하기 쉬우나, 손녀나 여손은 다 같이 인륜질서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아들의 딸을 일컫는 말로 쓰여 왔다.
그리하여 아들의 맏딸 · 큰딸[長女]이면 맏손녀 · 큰손녀[長孫女], 둘째딸이면 둘째손녀, 막내딸이면 막내손녀라 일컫는다. 손녀를 사랑스럽고 귀엽게 이르는 말로 ‘손주딸’도 함께 쓰인다. 손주는 손자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손녀를 ‘손자딸’로도 이른다.
손녀의 남편은 손서(孫壻) · 여손서(女孫壻), 또는 손주사위라고 일컫는다. 딸이 낳은 딸은 외손녀, 외손녀의 남편은 외손서(外孫壻) · 외손주사위라 이른다.
손녀는 특히 대가족제도이던 옛날에는 할머니의 귀여움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기 마련이다. 여자로서의 일상적인 예의범절을 가르쳐주고 익히게 하는 것도 어머니보다 할머니였다. 그만큼 할머니의 감화는 손녀에게 컸다.
젖먹이일 때에는 어머니의 품안이라도 젖 떨어진 뒤의 손녀는 주로 할머니와 한방에서 기거를 함께 하게 된다. 이리하여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할 뿐 아니라, 손녀 또한 할머니를 따르며 유아기를 보내게 된다. 얼마 동안 집을 떠나 있게 된 할아버지는, 그 아내의 안부를 물을 기회이면 으레 손녀를 빼어놓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이병기(李秉岐)의 다음 시 작품에서도 그러한 보기를 볼 수 있다. “외오 남북은 멀고 아직도 밤은 길다/어린 손녀와 그 방에 홀로 누워/청매화(靑梅花) 그것을 보고 날인가도 여기소.” 떨어져 있는 늙은 부부의 은근한 정뿐 아니라, 손녀를 끼워 넣는 시행(詩行)에서 한집안의 정겨운 모습이 더욱 도탑게 어려 든다.
특히, 유아기 손녀의 재롱은 한 가정의 꽃이요, 가족의 단란에 촉매 구실도 하여준다. 손녀 또한 장성하여 시집간 뒤에도 어머니를 그리는 정 못지않게 할머니의 정을 잊지 못해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에도 유아기를 할머니의 품안에서 자라난 손녀는 세상살이에 한 가지 복을 더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