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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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개념
같은 어버이에게서 태어난 아우와 손아래누이 또는 같은 항렬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가리키는 친족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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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같은 어버이에게서 태어난 아우와 손아래누이 또는 같은 항렬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가리키는 친족용어.
내용

≪역어유해 譯語類解≫에는 친동생을 ‘동ᄉᆡᆼ아ᄋᆞ’라 하였다. 아우와 손아래누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을 때는 ‘남동생’·‘여동생’이라 일컫는다.

남동생을 한자말로 남에게 대하여 겸손하게 이를 때는 사제(舍弟) 또는 가제(家弟)라 한다. 사제는 편지 같은 데서 형에 대하여 아우가 자기를 이를 때도 쓴다. 형이 아우에게 하는 편지에서 둘째아우인 경우에는 사중(舍仲), 막내아우인 경우에는 사계(舍季)라 쓴다.

일상생활에서 형이 아우를 부를 때는 ‘얘’라고 하나, 손아래누이가 출가한 뒤에는 그 남편의 성씨를 좇아서 ‘…집’ 또는 ‘…실’이라 부른다. 남의 아우를 이를 때는 계씨(季氏) 또는 계방(季方)이라 쓰기도 한다. 동생의 어원은 형제자매를 뜻하는 한자어 동산(同産 : 同母兄弟也)에서 찾을 수가 있다.

형제자매간은 예로부터 ‘몸은 나뉘었으나 기운은 이어졌다(分形連氣).’, ‘서로간에 친하고 화목하여야 한다(和親兄弟).’, ‘형은 동생을 우애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여야 한다(兄友弟恭).’, ‘스스로 우애하고 공경하여야 한다(自友自恭).’고 하였다.

‘형제위수족(兄弟爲手足)’이라는 문자도 있다. 형제 사이는 손발과 같다는 뜻으로, 곧 우애 있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함이다.

이러한 비유는 ≪장자 莊子≫에서 볼 수 있다. “형제는 손발과 같고 부부는 옷과 같다. 옷은 바꾸어 입을 수 있어도 손발은 한번 없어지면 다시 붙일 수 없다.”가 곧 그것이다.

또한 예로부터 ‘형제간에는 최선을 다하라(兄弟致美).’고도 하였다. 즐거운 일에나 궂은 일에나 어려운 일에나 어떠한 경우라도 형제간에는 서로 모든 것을 다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형제간 우애를 주제로 한 이야기나 작품도 많이 전한다. 조조(曹操)의 아들 식(植)의 <칠보시 七步詩>에 얽힌 이야기도 그 하나이다. 조식의 형 비(丕)는 문제(文帝)가 되자 동생에게 몹시 심하게 굴어, 하루는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에 시를 지으라 하였다.

조식은 “콩깍지는 솥 밑에서 불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울음 우네. 본디 같은 뿌리에서 생겼거늘, 들볶는 일이 어찌 이리 급한가(煮豆燃豆箕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라고 읊어 형의 처사를 못마땅해 하였다.

당대(唐代)의 ≪유양잡조 酉陽雜俎≫, 송대(宋代)의 ≪태평어람 太平御覽≫,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 등에 전하는 <방이설화 旁㐌說話>에는 동생이 나쁜 사람으로 등장한다.

방이는 가난하여 빌어먹었으나, 그 동생은 부자이면서도 몹시 인색하였다. 어떤 사람에게 밭 한 뙈기를 얻어 가지게 된 방이가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의 씨를 부탁하였다.

동생은 그것들을 쪄서 주었다. 방이는 이것을 모르고 정성을 다하였다. 그 중 누에 한마리가 생겨 황소만큼 커졌다. 샘이 난 동생이 그 누에를 죽이자, 많은 누에가 사방에서 집안으로 기어들어와 방이는 누에왕이 되었다.

그리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옷을 해입었다. 또 밭에서는 곡식 한알의 싹이 돋아 그 키가 한자가 넘었다. 방이가 이를 지키고 있는데 새가 와서 꺾어놓고 날아갔다.

새를 따라 산으로 간 방이는 돌 틈으로 들어간 새가 나오기를 기다려 멈추어 섰는데 밤이 되었다. 달이 밝자,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로 맛있는 음식을 나오게 하여 먹고 놀다가 헤어질 때에는 그 금방망이를 돌 틈에 숨겨놓았다.

방이는 그 금방망이를 가지고 돌아와 큰 부자가 되었다. 욕심 많은 동생은 형 방이의 흉내를 냈다가 도리어 어린애들에게 잡혀 코를 뽑히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흥부전>의 근원설화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흥부전>에는 형인 놀부가 심술꾸러기로, 동생인 흥부는 착하고 우애 많은 인물로 나온다. 곧 선악의 인물설정이 <방이설화>와는 뒤바뀌어 있으나, 그 주제는 다같이 형제간의 우애를 다룬 것이다.

그리고 길에서 주운 금덩어리를 형과 아우가 서로 양보하다가 결국에는 금덩어리를 강물에 버렸다는 ≪형제투금설화≫와 의좋은 형제가 가을에 벼베기한 뒤 서로 상대방의 생활의 어려움을 걱정하여 밤동안 자신 몫의 볏단을 상대방에게 옮겨놓았지만 날이 밝은 뒤 확인하니 여전히 똑같았다는 내용의 설화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박목월(朴木月)의 시 <하관 下棺>의 한 연인 “그 후로/그를 꿈에서 만났다/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형(兄)님!/불렀다/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그래도 그는 못들었으리라/이제/네 음성(音聲)을/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은 앞서 세상을 떠난 동생을 형이 꿈에서 보고 쓴 것으로, 형제간의 정분을 생각하게 한다. →형

참고문헌

『한국가족연구』(최재석, 민중서관,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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