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회의 의장인 상대등(上大等)을 역임하였다. 가계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진골귀족의 대표로 활동했고 진덕여왕이 죽은 뒤에 섭정왕(攝政王)으로 추대된 것으로 보아, 골품은 진골이었으며, 성은 김씨로 추측이 된다.
635년(선덕여왕 4)에 이찬(伊飡) 알천공은 독산성(獨山城)에 침입한 백제장군 우소(于召)의 군을 모두 물리쳤으며, 647년에 대장군(大將軍)에 임명되었다. 647년(진덕여왕 1)에는 반란으로 죽은 비담(毗曇)의 뒤를 이어 상대등에 취임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알천이 화백회의 의장이었을 당시, 회의의 구성원은 술종(述宗)·임종(林宗)·호림(虎林)·염장(廉長)·유신(庾信) 등이었다.
진덕여왕이 재위한 지 7년 만에 죽음으로써 성골(聖骨) 신분으로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자 화백회의에서는 의장인 알천공을 섭정왕, 곧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러나 알천공은 자신보다 김춘추(金春秋)가 덕망이 높고 세상을 다스릴 만한 영걸이라며 왕위 계승자로 추천한 다음 물러났다.
성골에서 왕위 계승자가 없을 경우에는 화백회의의 추대에 따라 의장인 상대등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럼에도 구귀족세력을 대표하는 알천공이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한 배경에는, 이미 선덕여왕 때부터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한 신흥귀족세력 김춘추와 김유신의 정치적 책략이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