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도막 노래형식으로 된 이 작품은 당시 서구에서 하나의 경향을 이룬 바이올린 소품, 특히 바이올린의 대가인 크라이슬러(Kreisler,F.)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 인디언 라멘트라는 곡조에 대비하여 ‘코리안 라멘트’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932년에 홍난파 자신에 의해서 초연되었고 연주회 때마다 중요한 곡목으로 등장하였다.
‘애수의 조선’이라는 제목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되었고, 4분의 3박자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작품의 기조에 특별히 전통적인 기법이 정립되어 있지는 않다. 단지 작곡자가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관계로 자신의 기교적 역량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는 충분히 화제가 되었다.
1930년대 중반에는 레코드로도 취입되어 한국 바이올린 소품의 전형이 되었다. 당시 일제강점기하에서 억압받던 시대에서 ‘조선’이라는 제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지녔으며, 1930년대 한국 창작의 상징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