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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거리에서 과녁을 향해 활을 쏘아 맞춘 결과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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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정한 거리에서 과녁을 향해 활을 쏘아 맞춘 결과로 승패를 겨루는 경기.
내용

우리나라의 활쏘기인 국궁(國弓)과 구별하기 위하여 양궁이라 한다. 신체단련과 정신수련에 좋은 운동일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가 같이 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활의 종류에는 몽고형(mongolian)·지중해형(mediterranean)·해양형(pinchy)이 있다. 현재 우리의 국궁은 몽고형에서 전해졌으며, 양궁은 지중해형에서 발전되었고 해양형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쓰는 활이다.

양궁경기의 시설과 용구는 활·화살·과녁 및 화살통·손가락보호대·팔보호대·활집 등이 있다. 활은 길이 180㎝ 이하로 대나무·플라스틱·글라스합판제 등이 있는데, 선수용으로는 글라스합판제가 좋다.

활의 강도는 남자용이 35∼42파운드, 여자용이 31∼37파운드이다. 화살은 길이 50∼75㎝로 목제·알루미늄·글라스제 등이 있으나 시합에서는 목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과녁은 원거리용이 지름 122㎝, 근거리용이 지름 80㎝이며, 5가지 색의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양궁의 종류에는 표적양궁·야외양궁·원사양궁·집중사양궁·실내양궁 등이 있다.

① 표적양궁의 경우 남자는 90m·70m·50m·30m, 여자는 70m·50m·30m에서 각 거리별로 36발씩을 쏘아 그 점수의 합계로써 순위가 결정된다. 각 거리에서 36발씩 1회 경기하는 것을 싱글라운드라 하고 2회 반복하는 것은 더블라운드라 한다. 올림픽대회에서는 더블라운드 표적경기만 실시하고 있다.

② 야외양궁은 야산이나 고원에서 표적을 세워놓고 풀코스 28개의 표적을 최장거리 60m, 최단거리 6m로 옮겨가며 쏘아 맞추는 경기방법이다. ③ 원사양궁은 원거리기록경기로서 얼마나 멀리 화살을 쏘느냐가 경기의 초점이 된다.

④ 집중사양궁은 지상에 지름 15m의 원형표적을 그려놓고 남자 165m, 여자 125m의 거리에서 36발을 쏘아 표적에 꽂힌 점수로 기록을 평가하는 경기이다.

⑤ 실내양궁은 실내경기장을 만들어 전천후경기를 할 수 있고 야간경기도 가능하다. 경기방법을 1엔드에 3발을 쏘며 남녀 모두 18m 거리에서 화살 30대로 실시하고 그라운드 60발의 합계점수로 순위를 정한다.

활쏘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부터 있어왔으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양궁시합은 1538년 영국 헨리 8세에 의한 경기대회가 최초이다. 그 뒤 1908년 제4회 올림픽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31년 영국을 중심으로 국제양궁연맹을 창설하고 같은 해 런던에서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일시 중단되었으나 1946년부터 부활되어 매년 한번씩 개최하였다가 1959년부터는 2년마다 한번씩 실시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오랜 전통을 가진 고유의 궁술(弓術)이 있어 광복 후부터 현대궁도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으며, 동시에 양궁도 도입되었다.

1962년 미8군에 근무하던 에로트중령이 남산 석호정(국궁활터)에서 처음으로 양궁의 시범을 보였다. 이듬해 9월에는 워커힐에서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전국남녀활쏘기대회에서 30m 양궁시범경기를 하여 최초의 양궁경기를 실시하였다.

1971년 제53회 전국체육대회 때 여자고등부 양궁경기를 실시한 뒤부터 고등부·중등부 등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78년 12월에 아시아궁도연맹이 창립되어 2년마다 아시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 12월 방콕에서 개최된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 개인과 단체종합에서 우승하여 우리 나라의 경기력을 국제적으로 떨치게 되었다.

또한, 1979년 7월에는 서베를린에서 개최된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당시 여고생이었던 김진호(金珍浩)가 6종목 중 5종목에 우승하였으며, 더블라운드 643점으로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하였을 뿐 아니라 단체전에서도 우승하여 한국 양궁의 위력을 세계에 부각시켰다.

이는 당시까지 광복 후 한번도 세계의 벽을 넘어본 적이 없던 국내기록경기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세계최고기록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낸 것이었다.

1981년부터는 소년체육대회에서도 정규종목으로 채택하였으며, 1983년 3월에 대한궁도회에서 분리하여 대한양궁협회를 결성하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는 서향순(徐香順)이 금메달, 김진호가 동메달을 획득하였으며, 1985년 10월에는 서울에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유치하고 양궁 강국인 소련·중공·동독 등의 선수들과 기량을 겨루어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 여자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1986년의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양창훈(楊昌勳)이 남자 30m더블·50m더블·70m더블·단체 등 4관왕을 차지하였으며 김진호와 박정아(朴貞娥)가 각각 3관왕이 되었다.

1988년의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김수녕(金水寧)이 여자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여자단체·남자단체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왕희경(王喜敬)·박성수(朴性洙)가 은메달, 윤영숙(尹永淑)이 동메달을 획득하여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의 쾌거를 올렸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대회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하였고 1996년 아틀란타올림픽대회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하였으며 1998년 12월 태국의 방콕에서 개최된 제1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로서 전종목을 석권하고 신기록을 수립하여 세계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1998년 현재 국내에 등록되어 있는 선수는 2,000여 명이며, 동호인 수는 3,5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참고문헌

『체육연감』(대한체육회, 1998)
『양궁』(스포츠과학연구소, 1984)
『국제스포츠정보자료집』(대한체육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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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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