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은 서양에서 개화기 때 양장과 함께 들어왔다. 19세기 초기의 서양 여자옷에는 장식품으로 반드시 양산을 들었다. 양산을 처음 사용한 계층은 외국에 주재한 외교관 부인이었으며, 이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현재 전하는 유물은 없고 영친왕의 모후인 엄귀비가 양장을 하고 양산을 든 사진만 전해지고 있다. 1910년대에 선교사가 경영하는 여학교에서는 장옷과 쓰개치마 대신에 박쥐양산[蝠洋傘]을 쓰게 하였다. 이것은 검은색 우산으로 우산을 편 생김새가 박쥐의 날개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낮에 썼으므로 양산의 기능을 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볕을 가리기 위한 기능보다는 내외용의 가리개 기능이 더 컸다. 그 뒤 차차 양산이 보급되어 1960년대까지는 여자들이 외출할 때 양산을 지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