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제작동기가 『삼국사기』 열전(列傳) 제7 김흠운조(金歆運條)에 전하며, 같은 내용이 축약되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655년(태종무열왕 2) 낭당대감(郎幢大監) 김흠운이 백제를 치다가, 양산 아래에서 백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이 때 대감 예파(穢破)와 소감(少監) 적득(狄得)도 싸우다 죽었다. 김흠운이 전사하였다는 말을 듣고 보기당주(步騎幢主) 보용나(寶用那)도 나아가 전사하였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이를 애도하여 「양산가」를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