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남부동 패총

  • 역사
  • 유적
  • 철기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김해식 유문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이칭
  • 이칭양산패총(梁山貝塚)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몽룡 (서울대학교, 고고학)
  • 최종수정 2024년 01월 05일
양산 남부동 조개더미 미디어 정보

양산 남부동 조개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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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김해식 유문토기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

내용

광복 전부터 양산패총으로 알려진 유적으로 1964년 서울대학교, 1967년 국립박물관에 의해 부분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된 바 있으나 보고서가 출간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파악은 어려운 실정이다.

유적이 위치한 양산군은 해안에서는 멀리 떨어진 내륙지방이지만 낙동강과는 인접해 있으며, 양산 자체가 낙동강 계곡에 면한 산맥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패총은 읍의 남동쪽에 반도처럼 돌출한 표고 150m 내외의 구릉상에 형성되어 있다.

이 양산패총은 동래패총 · 김해패총 등과 함께 농경과 야철(冶鐵), 그리고 사슴사냥 등을 통해 풍요로운 생업 경제를 영위했던 당시 낙동강 강안 일대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생활 유적이다. 당시 이 일대의 사람들은 낙동강과 해수를 통해 서로 긴밀한 경제적 · 문화적 교류를 맺으면서 서로 유사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패총의 퇴적층은 남북의 경사면에 발달해 있는데, 특히 북사면(北斜面)의 퇴적층이 두껍게 발달되어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시굴한 남북횡단트렌치에서는 그 남단 가까이에서 노지(爐址)로 보이는 불맞은 단단한 흙을 사이에 두고 2개의 목탄층이 확인되었다.

이 2개의 목탄층에 의해 구분되는 3개의 혼패문화층(混貝文化層)을 위에서부터 1·2·3층으로 해 각 층에서 채집된 목탄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한 결과, 1750±120B.P., 1750±120B.P., 1840±110B.P.의 연대가 얻어졌다. 이를 근거로 패총의 연대를 산출하면, 1·2층은 서기 200년경, 3층은 서기 100년경이라는 대체적인 편년이 가능하다.

출토유물로는 김해식적갈색찰문토기(金海式赤褐色擦文土器) · 김해식적갈색무문토기(金海式赤褐色無文土器) · 흑도(黑陶) · 김해식유문토기(金海式有文土器) · 신라토기 · 회색와도(灰色瓦陶) 등 토기류가 주류를 이룬다. 또한 첨구(尖具) · 화살촉[鏃] · 바늘[針] · 칼손잡이[刀子柄] 등의 골각기와 약간의 석기 및 자연유물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철기문화」(김원룡,『한국사』1, 국사편찬위원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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